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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가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분명 근대(즉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인식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세계적으로는 이른바 탈근대를 말하는 시대에 한국의 자본주의는 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성숙해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본가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국 자본주의를 이끈다는 신자유주의 세력은 자본주의라는 생산메커니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는 노력도 없고 또 지적 능력도 점점 더 퇴화하는 것 같다. 그럼 실제로 세계 전체를 운영하는 자본가들, 한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숭앙해 마지 않는 거물 자본가 세력은 요즘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 생각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된 것 중 하나로서 세계 경제포럼 (그 유명한 다보스 회의)의 2012년 연례회의 사업개요 내용을 간이 번역의 형태로 소개한다. (이 방면의 전문가는 아닌지라 용어가 정확하게 옮겨지지 않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이해 바란다.) 이 문서가 그들의 속마음을 어느정도 표현하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모든 것은 주체의 소화능력에 달려 있다. -- 정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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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세계경제포럼 2012년 연례회의

사업개요

 

Davos-Klosters, Switzerland 25-29 January

The Great Transformation:

Shaping New Models

거대한 변형 :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기

 

Purpose

목적

 

We are living in the most complex, interdependent and fast-paced era in recent memory. It is also the new context in which leadership will be exercised for the foreseeable future. Thus, the purpose of the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2012 is to ensure that leaders exercise their responsibilities jointly, boldly and strategically to improve the state of the world for future generations.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최근의 역사에서 가장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이며 속도가 빠른 시기에 살고 있다. 이 시기는 또한 예측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지도력이 발휘될 새로운 맥락이기도 하다. 그래서 2012년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의 목적은 지도자들이 책임감을 (공동으로, 그리고 대담하고 전략적으로) 발휘하여 미래 세대를 위해 세계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In Davos, leaders will share insights on what has changed fundamentally in the world, explore new conceptual models that are emerging, catalyse sought-after solutions and collaborate on the risks and opportunities that lie ahead. To this end and for over 40 years, the Annual Meeting has provided an unrivalled platform for leaders from all walks of life to shape the global agenda at the start of the year.

다보스에서 지도자들은 세계에서 근본적으로 변한 것에 대한 통찰들을 공유하고, 새로이 등장하는 개념 모델들을 탐구하며, 추구하는 해결책들의 마련을 촉진하고, 눈앞에 놓인 위험 및 기회들과 관련하여 협동할 것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40년 여 동안 세계경제포럼은 해마다 연초에 전지구적인 의제를 형성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에게 마련해 주어왔다.

 

The New Context

새로운 맥락

 

Across the world, decision-makers are struggling to take action on critical economic, political and societal issues arising in a variety of contexts. Most apparent is that the speed of change continues to accelerate worldwide, fuelled not only by globalization, but also by increasingly sophisticated technology.

세계 전역에 걸쳐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이슈들에 관하여 조치를 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매우 명백한 것은, 변화의 속도가 지구화만이 아니라 점증적으로 세련되어지는 테크놀로지로 인해 전세게적으로 계속적으로 가속화된다는 점이다.

 

The contextual change at the top of minds remains the rebalancing and deleveraging that is reshaping the global economy. In the near term, this transformation is seen in the context of how developed countries will deleverage without falling back into recession and how emerging countries will curb inflation and avoid future economic bubbles. In the long term, both will play out as the population of our interdependent world not only passes 7 billion but is also interconnected through information technology on a historic scale. The net result will be transformational changes in social values, resource needs and technological advances as never before. In either context, the necessary conceptual models do not exist from which to develop a systemic understanding of the great transformations taking place now and in the future.

가장 주목해야 하는 맥락변화는 여전히 균형 재조정과 부채경감’(the rebalancing and eleveraging)이다. 오늘날 이것이 전지구적 경제를 다시 형성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이 변형은 선진국들이 불황에 빠지지 않고 차입자본을 감소하고 개발도상국들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미래의 경제거품을 줄이는 데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 인구가 70억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정보테크놀로지를 통해 역사에 남을 규모로 상호연결됨에 따라 양자[‘균형 재조정과 부채경감’]는 끝까지 진행될 것이다. 그 순전한 결과는 사회적 가치의 변화 및 자원에 대한 욕구의 변화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진전이 유례없이 진행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 맥락에서든 현재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 일어날 이 거대한 변형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개념적 모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Integrating people, systems and technologies is an indisputable leadership challenge that ultimately requires new models, bold ideas and personal courage to ensure that this century improves the human condition rather than capping its potential. Thus, the Annual Meeting 2012 will convene under the theme, The Great Transformation: Shaping New Models, whereby leaders return to their core purpose of defining what the future should look like, aligning stakeholders around that vision and inspiring their institutions to realize that vision.

사람들, 체계들, 그리고 테크놀로지들을 통합하는 것은 논박의 여지가 없이 지도층이 직면하는 과제가 될 것이며, 이것은 (금세기에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기보다 증진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모델, 대담한 생각 그리고 개인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2012년 연례회의는 거대한 변형 :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기라는 주제 아래 모일 것이다. 이로써 지도자들은 미래가 어떨 것인가를 정의하는 핵심적 목적으로 되돌아가서 이해관계자들을 그 비전을 중심으로 정렬하고 제도들로 하여금 그 비전을 실현하도록 격려하게 될 것이다.

 

The Great Transformation: Shaping New Models captures not only the context but also the purpose with which leaders must now act ensuring that our future is one of inspired collaboration and bold solutions to global, regional and industry challenges and not a return to status quo. As is the tradition of the Annual Meeting, the programme will challenge long-held assumptions about society, politics, technology, business and economics to generate the powerful ideas and collaborative spirit desperately needed to manage the future course of world affairs.

거대한 변형 :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기라는 주제는 맥락을 포착할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목적 또한 포착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미래가 현상유지로 되돌아가지 않고 고취된 협동의 시대, 전지구적지역적산업적 과제들에 대한 대담한 해결책들의 시대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연례회의의 전통대로, 포럼의 프로그램은 사회, 정치, 테크놀로지, 사업 및 경제학에 대한 오래된 전제들에 도전을 하여 세계의 미래의 과정을 관리하는 데 절실하게 필요한 강력한 아이디어들과 협동정신을 만들어낼 것이다.

 

Thematic Roadmap: The Great Transformation: Shaping New Models

주제 로드맵 : 거대한 변형 :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기

 

A complex, interdependent and fast-paced world creates not only diverse outcomes but also unintended consequences that constantly test the cognitive limits of leaders and force us to shape new models. Thus, the four sub-themes of the Annual Meeting programme are conceptualized as dual imperatives to underscore the linkages between various models when addressing complex global, regional and industry issues.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이며 속도가 빠른 세계는 다양한 결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 또한 낳으며 이것들이 항상 지도자들의 인식의 한계를 시험하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모델을 구축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래서 이번 연례회의 프로그램의 네 세부주제는, 복잡한 전지구적지역적산업적 이슈들을 다룰 때 다양한 모델들을 서로 연결할 것을 강조하는 이중적으로 긴요한 것들로서 개념화되었다.

 

Growth and Employment Models

성장과 고용 모델

 

The policy prescriptions, industry models and performance incentives that emerged from an era of consumption and debt-driven growth must be transformed to deliver quality growth. Growth that is sustainable, entrepreneur-driven and employment-creating should be the outcome of the rebalancing and deleveraging of the global economy. As traditional work opportunities decline as a result of production increasingly based on knowledge and ingenuity, individual entrepreneurship will become a critical factor for future job and growth creation.

소비와 부채에 의해 추동되는 성장의 시대에 출현한 정책처방, 산업모델, 수행 인센티브는 질을 중시하는 성장을 낳는 것들로 변형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하고 기업가에 의해 추동되며 고용을 창출하는 성장이 전지구적 경제의 균형 재조정과 부채경감의 결과가 되어야 한다. 지식과 발명의 재능에 점점 더 기반을 두는 생산의 결과로서 전통적인 일자리가 하락함에 따라 개인의 기업가정신이 미래의 일자리와 성장 창출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Leadership and Innovation Models

지도력과 혁신 모델

 

The leading countries and global governance institutions of the Cold War era must create space for major emerging economies, private sector institutions and multistakeholder partnerships. These new actors should have the responsibility not only to address important global and regional challenges but also to introduce innovative solutions. The future will also show that younger and older generations will play a greater role compared to today. Thus, the rebirth of intergenerational responsibility must be embedded in leaders to avoid a future demographic divide.

냉전 시기의 주도적 국가들과 전지구적 통치제도들은 새로 등장하는 경제, 민간부문 제도들 및 다수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이 들어설 공간을 창출해주어야 한다. 이 새로운 행위자들은 중요한 전지구적지역적 과제들을 다룰 책임감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혁신적 해결책들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미래에는 노소를 막론한 모든 세대가 오늘날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지도자들에게 다른 세대에 대한 책임감이 다시 살아나도록 하여 미래의 인구 분할을 피해야 할 것이다.

 

Sustainability and Resource Models

지속 가능성과 자원 모델

 

The realization that human activities have a major impact on Earth’s ecosystem must drive future changes in behaviour and policies. Our ecological footprint will have to be fully internalized in business models. A new mindset should drive collaboration and innovation among governments, industries and companies to ensure that future resource constraints do not lead to greater energy, food and water insecurity.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생태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깨달음이 미래의 행위와 정책에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우리가 생태에 남기는 족적은 비즈니스 모델에 완전히 내화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정부들산업들회사들 사이에 협동과 혁신을 추동하여, 미래의 자원 제한으로 인해 에너지식량물을 확보하지 못하는 불안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Social and Technological Models

사회적기술공학적 모델

 

The next wave of technological innovation, particularly in life sciences, nanotechnology and artificial intelligence, will not just deliver productivity gains but will also transform us by adding new dimensions to our lives. At a societal level, the norms, behaviours and values that are protected and celebrated in the physical world are neither clearly established nor firmly anchored in the digital world. As the “Internet of things” that connects billions of sensors and devices becomes a reality, stakeholders should work together to safeguard the knowledge, data and networks that are critical resources for our future development.

특히 생명과학에서 일어날 기술공학적 혁신의 다음 번 파도인 나노테크놀로지와 인공지능은 생산성의 증가만을 낳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의 삶에 새로운 차원들을 추가함으로써 우리를 변형시킬 것이다. 물리적 세계에서 보호받고 찬양받는 규범들행위들가치들은 사회적 수준에서는 명확하게 확립되지도 않을 것이고 디지털 세계에 굳건하게 닻을 내리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수십억의 센서들과 장치들을 연결하는 사물들의 인터넷이 현실이 됨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은 우리의 미래의 발전에 중요한 자원들인 지식데이터네트워크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

 

The World’s Foremost Multistakeholder Community

세계 최고의 다수 이해관계자 공동체

 

Participation in the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is by invitation only and limited to the world’s leading:

세계경제포럼 연례회의에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만이 참여하며 이들은 아래와 같은 세계의 지도층에 국한된다.

 

. Chief executives of our 1,000 Partner and Member companies

. Political leaders (from the G20 and other relevant countries)

. Heads of international organizations

. Experts representing our Global Agenda Councils

. Representatives from key civil society stakeholder groups

. Young Global Leaders

. Social Entrepreneurs

. Technology Pioneers

. Global Shapers (under the age of 30)[각주:1]

. Media Leaders

. Spiritual and Cultural Leaders

 

The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 2012 will provide participants with strategic insights from each of the four thematic clusters, with the development of a Risk Response Network among its defining legacies. Particular emphasis will be placed on addressing the question of “How” in the true Davos Spirit, and elaborating innovative ideas and solutions to global challenges in a multistakeholder environment.

세계경제포럼 2012년 연례회의는 참가자들에게 이 네 주제군 각각에 담긴 전략적 통찰들을 제공하고 포럼이 그 동안 특유하게 이룬 것들로 위험대응네트워크를 발전시키도록 할 것이다. 포럼은 진정하게 다보스적인 정신으로 어떻게의 문제를 다루는 데, 그리고 다수 이해관계자라는 환경에서 혁신적인 생각들을 그리고 전지구적 과제들에 대한 해결책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특별하게 강조할 것이다.

  1. [도도] Shapers are exceptional in their potential, their achievements and their drive to make a positive contribution to their communities. Aged under 30 and working in diverse fields, the Shapers are a network of hubs founded and led by the next generation. http://forumblog.org/2011/10/who-are-the-global-shaper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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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2010년 3월 24일자 중앙대학교 대학원 신문의 '대학과 기업'이라는 기획란에 게재된 글이다.

 

신자유주의와 대학의 운명

 

90년대 중반 학부제 개혁을 통하여 한국의 대학 세계에 진출한 신자유주의는 이제 대학에 완전하게 뿌리를 내린 듯하다. 대학은 들뢰즈가 「통제사회에 관한 후기」에서 교육과 관련하여 말한 대로 ‘연속적 통제’에 확실하게 종속되었다. 대학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신자유주의가 상이한 양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영혼이 신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대학은 보기 힘들다. 교육과 연구를 위계화, 수량화, 경쟁의 부단한 부과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 어느 대학에서나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대학이 이렇게 신자유주의적으로 계속 통제되어도 교육과 연구가 잘 이루어진다면 대학과 관련하여 신자유주의를 애써 비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의 지배는 현재 한국의 대학들을 파멸로 치닫게 하고 있다. 며칠 전 명문 K대의, 그것도 매우 취직이 잘 되는 ‘좋은’ 학과에 속한 학생이 “자발적 퇴교”를 선언한 사건은 이 파멸의 징후 중 하나이다. 이 학생은 “이름만 남은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출처 http://cafe.daum.net/nuruneowul) 실로 그러하다. 대학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로 자화자찬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들은 ‘사업가’이기는커녕 잘해야 ‘장사 브로커’인 존재들이다.

이 점을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우선 신자유주의와 고전적인 (즉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가 그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인류사회를 장악한 것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힘 때문이다. 이 점은 자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인 맑스도 자본의 역사적 사명으로서 인정하는 바였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특성은 부의 생산보다는 재분배에 치중하는 데 있다. 말이 재분배이지 사실은 이미 창출된 부를 뺏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에 모두의 것으로서 존재하는 부를 민영화를 통해 뺏는 경우도 있고, 타인의 개인적인 재산을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뺏는 경우도 있다. 용산 참사는 바로 후자의 경우에 발생한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특성을 ‘강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러한 축적방식은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생산하게 함으로써 축적하는 고전적인 자본의 축적방식(‘착취’라고 불린다)과는 다르며 오히려 자본이 역사적으로 처음 형성될 때의 ‘수탈’(expropriation)에 가깝다.

본성이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대학에 들어와서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대학에서의 생산은 교육과 연구의 증진 즉 인간의 능력의 증진인데, 신자유주의는 이 일에 관심이 없다. 부단한 신자유주의적 통제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증진에 필수적인 자유로움을 박탈할 뿐이며, 이미 형성된 지적․정신적 자원을 모두를 위한 재화가 아니라 몇몇 개인의 재산으로 만드는 데 몰두할 뿐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의 이름으로!

실상 신자유주의가 자본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자본의 고전적인 축적방식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한편으로는 맑스가 분석해낸 자본주의 발전의 내재적 모순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고전적 논리에 따른 자본의 증식이 힘들어진다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의 타개를 위하여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이른바 정보화(디지털화)이다. 정보화란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추론해낸, 과학 혹은 지식이 직접적으로 생산력이 되는 발전된 자본주의 단계로의 이행을 나타낸다. 이제 자본에게는 지식을 상품으로 포획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지고, 따라서 지식을 생산하는 일을 하는 대학이 자본의 포획망의 한 가운데에 들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의 대학 장악을 처음 법적으로 허용한 것이, 대학에서 연방 정부의 지원으로 생산한 생산물을 사유재산으로 취득할 수 있게 만들어준 ‘베이-돌 법령’(Bayh-Dole Act, 1980년에 통과)이다. 이로써 모두를 위한 것이었던 대학의 자원을 사유재산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해졌으며, 이후에 사유화의 관행이 대대적으로 미국 대학들에 확산되었고 더 나아가 해외로 퍼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사유재산에 민감한 감각을 가진 교육담당부처의 도움으로 교육보다도 재산관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설립한 사립대학들이 꽤 되었다. 이런 대학들에서 종종 일어났던 비도덕적 축재 행위는 김영삼 정부(1993. 2월 출범)가 시행한 ‘학원비리척결’을 통해 일정하게 봉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제 개혁을 타고 처음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대학‘오너’들로 하여금 제도화된 방식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게 된다. 그래서 학부제는 그것을 기획한 사람들의 의도미국과 같은 연구 및 교육조건의 실현와는 달리 대학운영자들에 의해서 ‘교육과 연구에 이전보다 돈을 덜 들이는 방법’으로 변형되었다. 그래도 학부제 당시의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겨우 경비절감을 앞에 내세우는 소극적인 수준이었다. 지금은 몇몇 사립대학들에서 보듯이 학과 간 혹은 단과대학 간 경쟁을 부과하여 뒤쳐지는 학과나 단과 대학에 불이익을 주거나 심지어는 없애겠다고 협박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오너’이라는 이름의 권력이 부재하고 교수들의 힘이 강한 몇몇 사립대학들과 국립대학들에서는 교수들이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자신들을 갖다 바침으로써 오히려 더욱 강력한 (‘자율적’이기에 더욱 강력한!) 신자유주의 대학을 실현하는 ‘쾌거’를 이룬다.

그러나 이 쾌거는 대학을 자신의 재산이나 이익을 늘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쾌거일 뿐이며,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비극을 가져올 뿐이다. 심지어는 자본에게도 해롭다. 신자유주의가 대학을 장악하여 생산력의 최고 형태인 인간의 지적․정신적 능력의 양성을 망치는 것, 더 나아가 그나마 있는 지적․정신적 자원도 사유재산의 형태로 소수에게만 접근가능하게 하고 사회 전체로 보급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낮추는 것은 자본이 생산력의 발전을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시점에 생산력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신자유주의가 대학에 가져오는 파멸은 바로 신자유주의의, 그리고 자본 자체의 파멸로 이어질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동반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이 우리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와의 힘든 싸움에 좀더 자신있게 임하게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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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가 2007년 6월 24일 The European Graduate School(http://www.egs.edu/)에서 ‘사랑’에 대하여 한 강연의 골자이다. 이 강연은 http://www.youtube.com/에서 볼 수 있다.



1. 왜 정치적 개념으로서 ‘사랑’을 말하는가?


1.1 현재의 상태 그대로 인류가 스스로를 다스리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나이브할 것이다. 레닌이 당대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필요성을 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자생성’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이에 고착되어 있는 듯하다. 이 틈을 사랑이 메울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민주적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 심지어는 훈련의 장(field of training)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 개념으로서의 사랑이 갖는 의미이다. 


1.2 유대(solidarity)나 우애(friendship)가 아니고 왜 사랑인가?

① 유대는 상호이익 때문에 서로 돕는 단결하는 이익의 계산이다. 사랑은 이익의 합리적 계산을 넘어서 있다. 사랑은 이성과 열정(passions, 감성) 사이에 다른 관계를, 혹은 다른 종류의 합리성을 발전시킨다.

② 사랑은 변형을 포함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운데 달라진다(변이한다). 우애는 상호작용은 있으나 변형은 일어나지 않는 관계이다.


1.3 사랑은 자연스러운(natrural) 것이지만 자생적(spontaneous)이지는 않다. 훈련, 조직화가 필요하다. ‘악’(evil)이 되지 않도록.


1.4 용어와 개념은 다르다. [* 하트는 양자가 혼동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을 말한다.] 우리는 개념이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의미하지 않을 때 새로운 용어를 만들거나 아니면 개념을 강조한다. [* 하트는 여기서 후자를 택한다.] 사랑의 개념은 씨름할 만한 거대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2.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사랑과 부정적으로 기능하는 사랑

부정적으로 기능하는 경우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경우(이것이 바로 하트가 말하는 ‘사랑의 정치적 사용’이다)

① 정체성주의적 사랑(identitarian love), 동일한 것에 대한 사랑, 가까운 것에 대한 사랑 : 가족, 민족, 인종 등.

① 열려진 사회적 맥락에서의 사랑, 타자에게 열려있는 사랑.

② 에로스(개인들 사이의 낭만적 사랑)와 아가페(인류에 대한 사랑)의 분리.

② 에로스인 동시에 아가페, 개인적인 동시에 정치적.

③ 통일성(unity)으로 융합, 차이의 파괴.

③ 차이(특이성)에 기반을 둔 사랑, 차이들의 보존과 증식으로서의 사랑.

④ 사랑을 카리타스(caritas)로 환원, 빈자를 대상화한 사랑.

④ 빈자가 주체인 사랑, 빈자의 창조적 힘.

⑤ 무력한 것으로 이해된 사랑, 수동적 겪음(passion), 센세이션, 그냥 일어나는 것.

⑤ 생산적인 힘(심지어는 존재론적으로 생산적인 힘)으로서의 사랑, 능동적 행동, 학습되고 실천되는 것.



3. 악


사랑의 반대는 증오나 폭력이 아니다. (폭력도 사랑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악(evil)이 바로 사랑의 반대이다. 악은 사랑의 결여가 아니라 잘못된 사랑(love gone bad), 왜곡되고 타락한 사랑이다. 파시즘, 파퓰리즘, 종교적 근본주의 등은 다중의 사랑의 힘이 왜곡된 경우들, 혹은 앞에서 말한 부정적으로 기능하는 사랑이 공고화된 경우들이다.



4. 결론


우리의 정치적 문제는 우리의 사회적으로 구성적인 능력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회를 다르게 만들 수 있는가,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들을 변형할 수 있는가이다. [* 여기서 하트는 스피노자의 사랑 개념을 원용한다.[각주:1]] 스피노자에게 사랑은 외적 원인을 인식하는 상태의 기쁨이다. 기쁨은 사유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능력의 증가이다. 따라서 사랑은 외적 원인(타자들)을 인식하는 상태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능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는 차이들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의 공간이며, 기쁜 조우들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은 그러한 민주주의를 행할 수 있는 주체성들의 창출을 위한 훈련의 터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Democracy is the space of the free interaction of differences, and one that facilitates joyful encounters. In this sense love would be a kind of training ground for the creation of subjectivities capable of such a democracy.)




<보충>

『윤리학』 5부 정리10 주석.

“이렇듯 자신의 정동과 욕구를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다스리려는 사람은 덕들과 그 원인에 대한 지식을 가능한 한 많이 획득하려고 한다. 그리고 덕들에 대한 진실한 앎으로부터 나오는 즐거움으로 자신의 정신을 채우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의 단점들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사람들의 흠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며 자유의 거짓된 모습에 탐닉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Qui itaque suos affectus et appetitus ex solo libertatis amore moderari studet, is quantum potest nitetur virtutes earumque causas noscere et animum gaudio quod ex earum vera cognitione oritur, implere; at minime hominum vitia contemplari hominesque obtrectare et falsa libertatis specie gaudere.)



  1. “실로 사랑은 자신의 외적 원인에 대한 생각을 동반한 기쁨에 다름 아니며 증오는 자신의 외적 원인에 대한 생각을 동반한 슬픔에 다름 아니다.”(Nempe amor nihil aliud est quam lætitia concomitante idea causæ externæ et odium nihil aliud quam tristitia concomitante idea causæ externæ.) 『윤리학』 2부 정리13 주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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