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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 운동

커먼즈 패러다임의 성장 (The Growth of the Commons Paradigm)

커먼즈 패러다임의 성장 (The Growth of the Commons Paradigm)

 

데이빗 볼리어(David Bollier)

 

Understanding Knowledge as a Commons :

From Theory to Practice

edited by Charlotte Hess and Elinor Ostrom

The MIT Press

Cambridge, Massachusetts

London, England

2007

pp. 27-40

* ‘commons’는 맥락에 따라 공유지’, ‘공통재’, ‘공유재’, ‘공통체등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냥 커먼즈로 음역해 놓습니다. 계속 번역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위한 번역이지 정식의 온전한 번역이 아니니 인용 등 공식 문서로서의 사용을 금합니다. 내용 이해에 활용해주세요^^ 굵은체는 저자의 강조이고 밑줄은 옮긴이의 강조입니다. 옮긴이

 

 

케인즈는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경제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그의 새로운 생각들이 가진 장점에 관해서는 아무런 염려를 하지 않았다. 그를 걱정하게 한 것은 죽은 과거의 손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여기 공들여 표현한 생각들은 극히 단순하기에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어려움은 새로운 생각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낡은 생각들은 우리들 대부분처럼 자란 사람들에게는 가닥가닥 분기(分岐)하여 우리 정신의 모든 구석으로 들어온다.” [각주:1]

 

커먼즈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도 이와 같다. 커먼즈는 그 자체로 그렇게 어려운 분석틀이 아니다. 사실 커먼즈는 다소 단순하며 분명한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한 표준적인 내러티브에 푹 절어있기에, 커먼즈라는 생각은 종종 이국적인 듯 보인다. 미국의 정치문화는 어쨌든 자유 시장의 헌신적 옹호자이다. 이 문화는 영웅적 개인, 자수성가한 사람을 찬양하지 공동체를 찬양하지 않는다. 아마도 냉전이 공산주의와 그 사촌인 사회주의를 적으로 삼은 것이기 때문이리라. 미국인들은 집단관리 체제를 도덕적으로 문제적이고 자유를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추상적으로는 그렇다.

 

이러한 문화적 유산이 엄연한 상황에서 커먼즈가 우리가 깨닫고 있는 것보다 더 세상에 퍼져있다는 점을, 그리고 경제적·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고도로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은 끔직한 과제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이 입증하고 설명하려는 바이다. 커먼즈 모델은 학술적 소통을 위한 사회적 체계들에서 작동하고 있고 연구 도서관들이 지식을 모으고 공유하는 작업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과학공동체들이 그들의 연구를 창출하고 보급하는 행동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커먼즈 모델은 새로운 EconPort[각주:2]Conservation Commons에서도 작동하고 있는데, 전자는 그 사용자 공동체를 위해서 거대한 경제학 문헌을 관리하고 있고 후자는 환경과 보존 관련 문헌을 모아놓는 전지구적 공적 도메인을 구축하고 있다.

 

커먼즈라는 용어의 역사를 볼 때 이 용어를 그러한 지적·무형적 노력들에 적용하는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 커먼즈는 전통적으로 땅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불로소득자들(free riders)에 의한 과도착취의 결과로 생기는 비극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헤스와 오스트롬이 1장에서 분명히 하듯이, 땅과 같이 고갈될 수 있고 경쟁의 대상이 되는(rivalrous)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배제하고 자원을 사용하고 싶어한다자연자원 커먼즈와 고갈될 수 없고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정보 및 창조적 작품들과 같은 자원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먼즈라는 용어는, 두 유형의 커먼즈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즉 혼잡, 과잉수확, 오염, 불공정행위들 등)을 짚어내고 효율적인 대안들(즉 사회적 규칙들, 적절한 재산권들, 관리구조들)을 제안하는 것을 돕는 능력을 가졌기에 유용하다. 커먼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자원이 어떻게 가장 잘 관리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더 총체적인 시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커먼즈는 너무나도 많은 변형태들이 있기에 고정되고 보편적인 일단의 원칙들로 포착될 수 없다. 각 커먼즈는 그 참여자들, 역사, 문화적 가치들, 자원의 성격 등에 기반을 둔 자기 특유의 동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상이한 커먼즈에 명백하게 반복되는 몇몇 테마들이 있다. 이 장의 주된 목표는 오늘날 미국의 삶에서 작동하는 많은 상이한 종류의 커먼즈들을 보여주고 어떻게 이 커먼즈들이 현저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일반적 원칙들을 구현하는지를 예증하는 것이다.

 

유사성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실 점점 더 많은 수의 활동가들, 사유가들, 실천가들이 각자의 분야를 서술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커먼즈 어휘를 채택해감에 따라 조용한 혁명이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도서관 관리자들, 학자들, 과학자들, 환경론자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 인터넷 사용자들, 바이오텍 연구자들, 어장 학자들, 기타 많은 사람들이 공히 표준적인 시장 내러티브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엄밀한 재산권과 시장교환이 자원을 잘 관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데 회의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맥락에서 그렇다. 여기서는 정보를 복사하고 공유하는 것이 극히 쉽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판매용 상품으로 간주하는 시장의 경향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여기에 덧붙일 수 있다.[각주:3] 유전자정보는 지금 특허를 받는 것이 보통이며, 담수공급원이 다국적기업들에 의해서 구매되고 있고, 타운 전체가 판매를 위해 eBay에 내놓아진 적도 있다. 시장이론은 사유재산권과 가격이 자원에 할당될 때 가 창출된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종종 양도 불가능한 자원의 실제적 가치와 관련하여 어려움에 봉착한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활동과 시장의 성장을 본래적으로 좋은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시장은 종종 가족시간, 사회적 삶, 생태계와 같은 가치 있는 비()시장 자원을 부식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데도 말이다.

 

이러한 풍토에서 커먼즈의 언어는 귀중한 목적에 복무한다. 이 언어는 경제적·사회적·윤리적 관심사들을 더 큰 그림 속에 정렬시키는 일관된 대안적 모델을 제공한다. 이 언어는 특정 자원의 양도 불가능성에 대하여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의 가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커먼즈는 어떻게 시장체계의 외부에서 의미심장한 가치가 창조되고 지속되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이론적 진공을 채운다. 커먼즈 패러다임이 주로 주의를 집중하는 대상은 재산체계, 계약, 시장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들, 규칙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원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공유하게 하는 법적 메커니즘들이다. 공공재를 평가하는 매트릭스는 국내 총생산이나 회사의 순손익과 같은 협소한 경제적 지표가 아니라 쉽게 측정되지 않는, 더 풍요롭고 더 질적이며 인본주의적인 기준들이다. 이 기준들로서 주된 것을 몇 개만 들면 도덕적 정당성, 사회적 합의와 공정성, 의사결정에서의 투명성, 생태적 지속 가능성이 있다.

 

근자에 이루어진 커먼즈 담론의 확산은 이중적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커먼즈를 밝혀내는 것을 도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공적 담론을 제공하는 가운데 이 커먼즈들을 사람들이 커먼즈로서 보게 만듦으로써 이 커먼즈들의 발전을 도왔다.

 

이런 의미에서 커먼즈는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즉 새로 인식된) 문화적 형식이다. 커먼즈 담론은 기술(記述)적이면서 구성적이고 표현적이다. 커먼즈 담론은 공동체를 다스리는 모델을 확인해내기 때문에 기술적이다. 만일 이 모델이 확인해내어지지 않았다면 연구되지 않은 채로 있었을 것이다. 커먼즈 담론은 우리에게 새로운 언어를 줌으로써 커먼즈의 원칙들에 기초한 새로운 공동체들을 구축하는 것을 돕기 때문에 구성적이다. 커먼즈 담론은 커먼즈의 언어가 사람들이 일단의 자원들과의 개인적 연관을 천명하고 서로간의 사회적 유대를 천명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표현적이다.

 

그렇다면 커먼즈 담론의 성장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에 걸맞은 더 문화적으로 만족스러운 정신적 지도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비록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경제와 문화를 극적으로 변화시켰지만, 우리의 정신적 지도는 여전히 인터넷 이전 시대의 풍경을 그리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창조적 작품들과 정보는 과거에 물리적 컨테이너(종이, 비닐, 필름) 안에 고정되었는데, 이는 지금은 디지털 네트워크들에 의하여 도전을 받고 있는 일단의 사회적 관행 및 시장관계를 함축한다. 많은 사람들은 커먼즈를 그토록 많은 창조성과 지식 창조를 추동하는 새로운 사회적 동학 및 시장 동학을 이해하는 유용한 템플릿(template)으로 본다.

 

커먼즈는 또한 어떤 정치적 주장들을 내세우기 위해 거론된다. 방송채널, 인터넷, 황지(荒地) 지대들, 과학적 문헌에 대해서 그것이 커먼즈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이 자원들이 미국 국민에게 속한다고 (혹은 특정의 이익 공동체들에게 속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국민이 이 자원을 통제하는 법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커먼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시민들이 (혹은 사용자 공동체들이) 투자자들보다 상위에 있는 주된 이해관계자들이며 이 공동체 이익들이 반드시 상품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커먼즈 담론의 성장은 근본적으로 현대의 환경운동과 많은 점에서 유사한 문화적 현상이다. 듀크 대학의 법학 교수인 제임스 보일(James Boyle)은 디지털 문화에 대해서 말하는 데서 보이는 현재의 혼란상을 1950년대에 비견하였는데, 이는 합성화학제품, 감소하는 조류의 수, 오염된 수로가 개념적으로 연관되어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공유되고 전체를 아우르는 내러티브가 미국 사회에 없었던 때였다. 이러한 따로 떨어진 현상들 사이에 지적 연관들을 짓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각주:4] 조류관찰자들과 수렵꾼들처럼 서로 이익상의 공통점이 없는, 심지어는 서로 적대적인 유권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공동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도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분석이 아직 정식화되거나 발표되지 않았던 것이다.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 알도 리어폴드(Aldo Leopold)를 비롯한 초기 환경론자들의 획기적인 업적은 설득력 있는 비판을 널리 퍼뜨려서 그것이 임박한 생태재난에 대한 새로운 대중적 이해를 만들어낸 데 있다. 매우 실질적인 의미에서, 환경론이 정치·문화적 운동으로 부상한 것은 새로운 언어에 의해 가능했다. 이 새로운 언어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오용하는 다양한 행태들을 더 통일적인 방식으로 보게 해준 것이다. 새 언어는 이 행태들과 관련하여 환경이라는 이름을 대중의 정신에 함부로 하지 못할 소중한 것으로 각인시켜 놓았다. 시간이 지나자, 이 문화적 플랫폼은 <그린피스>의 시민불복종에서 <환경방어기금>(Environmental Defense Fund)[각주:5]의 중앙집중적이고 시장지향적인 옹호, 그리고 보존에 초점을 맞춘 <오더본협회>(Audubon Society)[각주:6]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운동을 낳았다.

 

정보 커먼즈가 우리 시대에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일단의 새로운, 겉으로 보기에는 분리된 현상들아직은 서로서로 연관된 것으로 혹은 우리의 민주적 정체(政體)의 건강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되지 않고 있는 현상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을 조직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그런데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화학제품들과 달리 정보 커먼즈의 오용행태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이나 상해(傷害)를 낳지는 않는다. 이것이 창조적 표현, 정보의 흐름, 그리고 우리 문화의 실험적 백색 공간이 현재 직면한 위험들을 언어를 통해 노출하는 데 큰 부담을 준다. 담론으로서의 커먼즈는 이러한 문제들을 명확히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을 도울 수 있으며 창조성과 지식의 정치에 대하여 말하는 공적 언어(a public vernacular)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커먼즈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회의론자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케인즈의 통찰이었다. 커먼즈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우리가 먼저 지배적인 (편견에 찬) 사고 범주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기꺼이 이 땅의 현실과 새로 씨름하고 다양하고 특수한 사례들 사이의 점들을 연결시켜야 한다.” 그런 정신으로 나는 이어지는 지면에서 다양한 연구분야들과 공동체들에 의해 수립된 두드러진 커먼즈에 대한 상쾌한 개관을 제공해보겠다.

 

새로운 언어로서의 커먼즈

 

커먼즈에 관한 학술연구가 1990년대 이래, 특히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의 획기적인 책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서(Governing the Commons, 1990)[각주:7]의 출간 이래 꾸준하게 발전하였다.[각주:8] 연구작업 가운데 많은 부분은 커먼즈 관련 장서들을 소장한 훌륭한 도서관[각주:9]을 가지고 있는, 인디애너 대학의 <정치이론 및 정책 분석 워크샵>(Workshop in Political Theory and Policy Analysis) 같은 학술기관들을 통해서 그리고 <커먼즈 디지털 도서관>(Digital Library on the Commons)[각주:10]과 그와 관련된 <공유재산 연구를 위한 국제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Common Property (IASCP))[각주:11]의 문서들을 통해 자극받았다.

 

최근에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전문적 유권자들이 커먼즈에 강렬한 관심을 보였다. 학자들, 다양한 분야의 실천가들, 공공정책전문가들, 활동가들이 커먼즈에 대하여 새로운 대화를 시작했으며 이것이 다시 이 주제에 관한 관심을 활성화하였고 커먼즈 담론을 널리 퍼뜨렸다.

 

시장 활동의 무자비한 확대에 맞서 싸우는 환경론자들과 보존론자들이 커먼즈 언어의 가장 열정적인 초기 채택자들”(early adopters) 가운데 속했다. 수전 J (Susan J. Buck)전 지구적 커먼즈 입문The Global Commons: An Introduction,[각주:12] 이콜로지스트(The Ecologist)지가 낸 누구의 공통적 미래인가? 커먼즈를 되찾기(Whose Common Future? Reclaiming the Commons)[각주:13], 그리고 피터 반즈(Peter Barnes)누가 하늘을 소유하고 있는가? 우리의 공통적 자산과 자본주의의 미래(Who Owns the Sky? Our Common Assets and the Future of Capitalism )[각주:14]와 같은 책들이, 일정한 공유된 자연자원들은 커먼즈로서 간주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 대기, 해양, 어장, 지하수 및 기타 담수공급원, 황지(荒地) 및 지역의 개방된 공간들 그리고 해변들은 모두가 점점 더 커먼즈로서 간주되게 되었다. 즉 모든 사람이 법적이지는 않지만 도덕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관리되어야 하는 자원으로서 간주되게 된 것이다.

 

커먼즈 담론을 환경론자들이 받아들인 것에 조응하는 것은 개럿 하딘(Garret Hardin)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우화의 가면을 벗기는 데 새로이 관심이 쏟아지는 현상이다.[각주:15] 개인적 재산권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공유지는 자원의 과도한 사용과 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 하딘의 강력한 은유는 재산권 보수주의자들이 공적 자원의 정부 관리(管理)와 싸우기 위해 사용해온 분석이었다. 그러나 이제 방대한 문헌이 보여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관리되는 커먼즈가 적절한 제도적 설계와 사회적 규범이 갖추어지면 장기간 동안 완전히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비극은 불가피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제 환경운동의 많은 분파들이 그들의 주장에 맥락을 부여하고 지탱하는 철학적 틀로서 커먼즈에 주의를 집중한다.[각주:16] 예를 들어 특이 서구에서 현명한 사용및 재산권 운동과 맞서 싸우는 환경론자들은 커먼즈를 공유지(public lands, 公有地)[각주:17]의 사적 착취와 오용에 맞서 싸우는 것을 돕는 틀로서 참조해왔다. 그들은 공유지(公有地)에 존재하는 숲, 광물, 초지, 물이 미국 국민에게 속하며 따라서 사적인 경제적 이익에 넘겨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시에라클럽>(Sierra Club)[각주:18]의 회장인 칼 포프(Carl Pope)는 자연 커먼즈에 관하여 썼으며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각주:19]은 식수체계의 사유화를 좌절시키기 위한 싸움에서 물이라는 전지구적 커먼즈에 관하여 말했다.

 

공적 신뢰(public trust)라는 교의를 옹호하는 사람들 또한 커먼즈를 자신들의 작업의 철학적 지주로 삼는다. 특정의 자원들은 성격상 본래적으로 공적이며 사적 개인들이나 정부에 의해 소유될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의의 내용이다. 로마법으로 소급되는 이 교의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의 이익의 피위탁자(trustee)이지 공적 재산의 소유자가 아니며 따라서 그 재산을 사적 이익체들에게 팔거나 나누어줄 수 없다. 실제로 공적 신뢰 교의는 강, 해변 및 기타 공적으로 소유되는 자연자원들에의 공적 접근을 보존하는 법적 도구이다. 그것은 환경 커먼즈를 시장의 논리로 종획하는 것을 막는 보루이다.

 

환경법에서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의 옹호자들 역시 자신들의 작업을 커먼즈 틀 내에 위치시켰다.[각주:20] 사전 예방원칙에 따르면 새로운 위험의 주창자들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선행 행동을 취할 의무가 있다. 많은 기업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피해에 대해서 사후에 보상하는 것은 윤리적이지도 않고 비용효율이 높지도 않다는 것이다.

 

커먼즈를 활용하는 이러한 상이한 흐름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도덕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는 근본적인 사회윤리에 호소한다는 점이다. 이 흐름들은 법에서는 인정되어 있을 수도 있고 아직 인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윤리적 규범들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미국의 정체(正體)에서 국민(people)의 의지가 법에 선행하며 법의 정신을 형성한다. “we the people” 이라는 생각이 시장과 국가의 이익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독립적인, 도덕적 권위와 힘의 탁월한 원천이다. 법은 지고하지만, 항상 자신을 표현하고 법으로 옮겨놓기 위해 싸우는 국민의 의지와 동의어는 아니다.

 

이렇듯 커먼즈는 정체 생활에서 항상 제3의 힘으로 작용해왔으며 자신의 이익을 시장과 국가에 맞서서 표현하기 위해 항상 싸웠다. 커머너들(commoners)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합의를 조롱하는 개인들 혹은 회사들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된 규범들에 대한 책무를 회피하려는 불로소득자들(free riders)이다. 예를 들어 담배산업이 그 시장 수입을 보호하기 위해서 흡연의 위험에 대한 정보를 숨겼을 때, 이들은 법에 의해서는 아직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사회적 윤리를 어긴 것이다. 자동차산업이 받아들여질 만한수준의 안전설계는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요건을 관철시키려 할 때, 이들은 예측 가능한 설계위험이 감소되어야 한다는 공중의 윤리적 기대를 미리 제압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들이 시사하듯이, 커먼즈는 사회 거버넌스(social governance)[각주:21]의 근본적 규칙들을 놓고 종종 시장 및 국가와 교전을 벌인다. 이 싸움들 중 다수에는 양도 가능성(alienability)의 문제가 관련된다. 국가는 어떤 자원을 사유재산으로 취급되도록 허용해야 하는가? 법은 회사들에게 인간 게놈(genome)의 일부를 통제할 권한을 허용해야 하는가? 제약회사들은 인간의 눈물에 들어있는 항생능력이나 특수한 질병에 대한 유전자 정보를 소유하도록 허용받아야 하는가?

 

시장 담론은 법이 그러한 살아있는물질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허용하는 것이 완전히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커먼즈의 주창자들은 그러한 물려받은 자연의 요소들종자계보, 유전자 정보, 야생, 동물의 종들, 대기은 인류의 공통적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윤리적으로 그러한 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속하며 (적어도 그것이 인간에 의해서 통제되는 만큼은 그렇다) 따라서 커먼즈로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재산권과 시장체계도 적절하게 구축된다면 보존과 오염감소에 유용한 접근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커먼즈 담론의 대체물이 아니다. 시장과 사유재산의 언어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교환가치와 가격을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 담론에 파묻힌 세계관은 자연자원을 본질적으로 대체 가능한 것으로 취급하고 희소성이 높은 가격을 통해 고쳐질 수 있다고 본다. 경제학은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수요공급의 법칙에 지배되는 객관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인간이 다른 기준에 따라 상호작용 해야 하는 살아있고 사랑받는 힘(as an animate, beloved force)으로 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 기반의 정책들이 일부 영역에서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시장 체계 전체는 그 스스로 자연을 보존할 가능성이 낮다. 에세이 작가 웬들 베리(Wendell Berry)가 설명했듯이, “우리는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단지 가치가 있다고 결론지은 것은 착취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지킨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한 만큼 우리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구체화하는(particularizing)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아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각주:22] 커먼즈가 어떤 자연자원들은 판매용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구체화하는 언어를 주창하는 하나의 길이다.

 

정보 커먼즈의 다양한 형태들

 

자연 커먼즈가 유한하고 고갈 가능하다면 (숲은 개벌(皆伐)질 수 있고 지하수는 마를 수 있다) 이 책에서 집중해서 다루는 정보 커먼즈(information commons)는 매우 다르다. 과학, 학계, 학술적 소통의 커먼즈는 주로 사회적이고 정보를 중심으로 한다. 이 커먼즈는, 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사용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재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실로 많은 정보 커먼즈가 일부 논평가들이 커먼즈라는 화수분이라고 불렀던 것에 해당하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자원을 사용하고 사회적 공동체에 참여하면 할수록 더 많은 가치가 창출된다.[각주:23] 작동원칙은 많을수록 더 즐겁다이다. 전화 네트워크, 과학 문헌들, 혹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가치는 사업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실제로 증가한다. 이는 경제학자들이 네트워크 효과라고 지칭하는 현상이다.

 

인터넷과 다양한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미국인의 삶에 확산되어 튼튼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소통 및 협동을 가능하게 함에 따라, 커먼즈라는 화수분이 널리 퍼진 현상이 되었다. 우리는 고정된 정형적인(canonical) 제작물들의 희소한 공급을 특징으로 하는 인쇄문화에서, 실질적으로 무비용으로 쉽게 복제될 수 있고 분배될 수 있는, 항상 진화하는 제작물들로 이루어진 디지털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 중앙집중적 제작과 하나에 중심에서 다수로의 분배(one-to-many distribution)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의 매스미디어 체계는 탈중심화된 제작과 다수에서 다수로의 배급을 특징으로 하는 멀티미디어 네트워크에 의해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획기적 이행의 주된 효과 하나는 그 자체가 광범위한 경제적·기술적 귀결들을 가지는 새로운 온라인 사회구조의 창출이다. 이 사실의 아마도 가장 주목할 만한 표현은, 프로그래머들의 개방된 공동체들에 의해 창출되는 비판매(nonproprietary) 소프트웨어의 강력한 새로운 장르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이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판매 소프트웨어의 주된 경쟁자가 된 컴퓨터 운영체제 GNU Linux이다.[각주:24] 수백 개의 오픈소스 프로그램들을 구축하고 다듬는 커먼즈 기반의 생산체계는 매우 강력해서 주요 하이테크 기업들이 공개된 기술적 플랫폼을 중심으로 경쟁적 전략들을 구축하고 있을 정도이다. IBM과 선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는 해당 영역에서의 기술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그들의 수십 개의 소프트웨어 특허들을 공개소스 기반으로 이용가능하게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들은 또한 공개소스 소프트웨어를 그것을 폐쇄시킬 소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적 방어 기획인 <소프트웨어 자유 법 센터>(Software Freedom Law Center)를 지원하고 있다.

 

놀랄 일이 아니지만, 지식 생산과 보급의 경제·사회적 전제들에서의 그러한 급진적 변화는 어쨌든 더 정태적인 기술적·경제적 맥락에서 생긴 저작권 및 상표법과 관련하여 심한 새로운 긴장을 창출했다. “자율생산”(peer production)[각주:25]공개소스 소프트웨어, 협동적 웹사이트들, p2p 지식공유 등이 가진 급진적 효율성은 자유시장 이론에 관한 기본 전제들 일부에 도전을 가하고 있다. 적어도 네트워크화되어 있는 디지털 환경에 적용되는 바의 전제들의 경우에는 그렇다.[각주:26] 예전에 자유시장 이론에서는 그저 당연시되거나 아니면 최소화되었던 것, 즉 사회적·시민적 요인들이 경제적 생산에서 하는 역할이 이제는 그 나름의 강력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커먼즈 패러다임의 적절성은 점점 더 많은 상업, 학술연구 및 일반적 사회적 삶이 인터넷 플랫폼으로 이주함에 따라서 더욱더 커질 따름이다. 벤처 자본가들은 이미 혁신을 위한 가장 풍요로운 기회 가운데 일부가 네트워크화된 환경의 사회적 동학에 투자를 하는 데 놓여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지금 소셜 네트워킹소프트웨어의 붐이 일고 사회적 기반의 포크소노미”(대중분류법)(folksonomy, folk taxonomy)[각주:27]메타 태깅”(metatagging)[각주:28]를 통해 정보를 조직하고 회수하는 새로운 계획이 활발하게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각주:29] 하이테크 세계가 사회적 규범과 협동적 구조에 이토록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실상 이는 온라인 커먼즈의 거버넌스 설계가 점증하는 실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참여 미디어”(participatory media)의 새로운 네트워크는 단지 기술꾼들(techies)의 집착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서도 커먼즈 패러다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웹로그들(web logs) 혹은 블로그들이 참여 미디어의 최초의 주된 표현형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소통에 동력을 부여할 다양한 후속 혁신들이 싹트고 있다. 이 혁신들은 블로그 게시글들의 신디케이션 피드”(syndication feeds), 음악과 대화의 팟캐스팅신디케이션, “민초 저널리즘웹사이트들을 포함한다. 이 혁신들은 또한 사진들을 공유하는 새로운 웹 플랫폼(Flickr), 모든 유형의 창조적 작품들(Ourmedia.org), 속보 뉴스 이벤트들(Publicnews.com), 그리고 촣아하는 웹 책갈피들(del.icio.us)을 포함한다. 누구나 원하는 사람이면 기고할 수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이제 웹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이트 가운데 하나로서 한 달에 530만 명의 개인들이 방문한다. 위키피디아는 백만 개 이상의 항목을 모아놓았으며 60개 이상의 언어로 된 위키피디아들이 구축되도록 하였다.

 

하이테크 혁신들이 온라인 공동체들의 성장을 촉진함에 따라반대로 회사들은 암호화와 광범한 저작권보호를 통해 더 많은 내용을 문단속하려고(lock up) 하였다많은 이들이 몰리는 과학·학술·창조 공동체들이 커먼즈 모델의 가치를 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바이오테크 연구자들, 음악가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집단들이 자신의 고유한 자율기반 생산(peer-based production)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그것을 강화하고 보호하려고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항상 과학, 학술연구 및 창조성을 지탱해왔던 사회적 토대를 재발견한 것일 뿐이다. 과학연구 공동체는 오랫동안 지식과 자원의 공유, 열려진 대화, 사기성 연구에 대한 제재를 소중하게 생각해왔다. 여러 해 동안 학계는 자치 공동체의 공유와 개방성이라는 마찬가지의 윤리로 번성해왔다. 재즈·블루스·힙합의 창조성은, 작품들을 다른 예술가들이 빌리고 따라하고 참조하는 것을 장려하는, 세대를 가로지르는 전통들과 음악 공동체들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이 분야에서의 커먼즈에 대한 깨달음은 시장의 새로운 침투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유발되었다.[각주:30] 고객들은 회사들이 학술저널, 음악 CD,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 높은 가격을 매기는 데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내용을 문단속하고 사용자들의 공정사용권을 제한하고 공적 도메인을 축소시키는 디지털 권리 관리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저작권보호 기간의 연장, 그리고 최초판매원칙”(first-sale doctrine)(이는 구매자들에게 DVD, 책 및 기타 생산물을 임대 혹은 대여하도록 허용한다)을 무효로 하려는 시도들이 저지되고 있다. 사람들은 소비자 보호와 소비자의 법적 권리를 감소시키는, 소프트웨어와 웹사이트들에 관한 쉬링크랩”(shrink-wrap) 라이센스[각주:31]클릭스루”(click-through) 라이센스[각주:32]에 각각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전개에 대응하여 많은 학문분야들, 대학들, 전문분야들, 창조적 부문들, 사용자 공동체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개발되고 분배되는 방식에 대한 더 많은 통제권을 열렬히 주장한다. 시장체제를 거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정보 커먼즈를 발전시키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력적인 동시에 재정적으로 가능하다.[각주:33] 예를 들어 많은 전문분야들은 문헌의 가장 광범한 접근과 분배를 보장하기 위해서 학술 간행물에 대해서 오픈액세스원칙을 채택하였다.[각주:34] <국립건강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은 자신이 기금을 주는 모든 의료연구를 상업 저널로 출판된 1년 이내에 오픈액세스 규칙 아래 이용될 수 있게 만들려고 하였다. (2005년에 상업 저널 출판사들은 이 규칙을 재량에 따르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개별 대학들은 논문 사전배포본들, 논문들, 연구데이터 등의 영속적 보관을 위해 학내 문서보관소를 구축하고 있다.

 

음악, 영화, 시각예술에서 수백만의 창작자들이 국제적으로 여섯 개의 주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라이센스 가운데 하나를 사용하여 일반 대중에게 자신들의 작품이 비상업적 목적으로 다른 이들과 공유될 수 있음을 알렸다.[각주:35] 창작자들이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사용하는 것은 보통 어렵다. 권리소지자를 찾아내고 라이센스를 협상하는 데서의 어려움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들은 이것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품들의 공유와 분배를 더 손쉽게 만들어준다. 이 라이센스들이그리고 민초 미디어의 공유를 위한 사이트인 YouTube.com과 같은 여러 야심찬 온라인 호스팅 서비스들이가 정보의 흐름과 창조성에 새로운 활력을 크게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커먼즈의 미래

 

사상의 조류로서의 커먼즈의 거대한 미덕은, 시장이나 국가로부터 높은 정도의 창조적 자율성을 가진 삶의 사회적 조직화에 관해서 말하는 능력이다. 커먼즈는 이 문화적 활동의 지고의 권리를 되찾고자 한다. 커먼즈는 그것을 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작용하며 자기 나름의 의미심장한 일을 (종종은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분리된 경제로서 명명하고자 한다. 커먼즈는 선언, 이데올로기, 전문적 유행어가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들의 풍요로운 생산성과 이 공동체들을 위협하는 시장 종획에 대하여 말하기 위한 유연한 템플릿이다.

 

커먼즈에 대한 관심의 폭은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며, 이는 커먼즈가 문화적으로 매력적인 방식으로 어떤 매우 실제적인 욕구들에 복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커먼즈는 새로운 일단의 가치들이 공적인 정책논의들에서 표명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커먼즈는 다양한 유권자들이 공동체 자원에 관한 통제력을 다시 주장하는 것을 돕는 데 유용한 도구들과 어휘를 제공한다. 커먼즈는 시장 종획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공유 자원을 보호하는 법적·제도적 메커니즘들을 포착해내는 것을 돕는다.

 

커먼즈의 옹호자들은 종종 커먼즈의 동학을 시장의 동학과 구별하지만, 나는 커먼즈와 시장이 서로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추구되는 것은 양자 사이의 더 공정한 균형이다. 시장과 커먼즈는 협력작용(synergy)의 관계에 있다. 이들은 서로 침투하고 보완적 과제들을 수행한다. 사유재산이 공적 욕구와 균형을 맞추도록 허용하는 커먼즈(도로, 보도, 그리고 소통채널들을 생각해보라)가 있어야만 사업이 번창할 수 있다. 커먼즈를 사유화하면 사회적·시민적 욕구를 해결하는 수단만이 아니라 상업, 경쟁 혁신을 질식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커먼즈를 방어하는 것은, 인간 사회들이 시장이 그 자체로는 충족하지 못하는 집단적 욕구와 특이성들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주 많은 다양한 분야에서 커먼즈가 재발견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재산법과 시장을 더 광범한 일단의 윤리적·환경적·민주적 가치들과 더 양립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더 기본적인 수준에서 커먼즈에 대한 관심은 자원을 효율적이고도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한 실질적인 새로운 모델들을 낳고 있다.

 

나는 커먼즈의 미래가 새로운 법적·제도적 메커니즘들을 발명하는 실천가들과 더 나은 이해, 전략적 혁신, 공적 교육을 촉진하는 지적 도구들을 개발하는 학자들 및 사유가들 사이의 변증법적 대화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에 일어난 일로 미루어 볼 때, 이 대화는 많은 유익한 결과들을 산출해낼 공산이 크다.

  1. John Maynard Keynes,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1936; reprint edition, Prometheus Books, 1997), Preface, p. viii. [본문으로]
  2. [옮긴이] “an open-access, open-source digital libray for students and researchers in experimental microeconomics”(20) [본문으로]
  3. 예를 들어 James Ridgeway, It’s All for Sale: The Control of Global Resources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04) 참조. [본문으로]
  4. James Boyle, “A Politics of Intellectual Property: Environmentalism for the Net?”, Duke Law Journal 47(1997):87–116. [본문으로]
  5. [옮긴이] http://www.edf.org/ [본문으로]
  6. [옮긴이] http://www.audubon.org/ [본문으로]
  7. [옮긴이] 번역된 한국어본 이름에 맞추었음. [본문으로]
  8. Elinor Ostrom,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for Collective Ac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본문으로]
  9. [옮긴이] Ostrom Workshop Research Library [본문으로]
  10. [옮긴이] 오식? 지금은 “ Digital Library of the Commons”이다. [본문으로]
  11. [옮긴이] 지금은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Common”(IASC)라고 되어 있다. [본문으로]
  12. Susan J. Buck, The Global Commons: An Introduction (Washington, DC: Island Press, 1998). [본문으로]
  13. The Ecologist magazine, Whose Common Future? Reclaiming the Commons (Philadelphia: New Society Publishers, 1993). [본문으로]
  14. Peter Barnes, Who Owns the Sky? Our Common Assets and the Future of Capitalism (Washington, DC: Island Press, 2001). [본문으로]
  15. Garrett Hardin, “The Tragedy of the Commons,” Science 162 (December 13, 1968):1243–1248. [본문으로]
  16. 이 그룹들에는 the Georgetown Environmental Law and Policy Institute, the Public Trust Alliance, Riverkeepers가 포함된다. [본문으로]
  17. [옮긴이] 이는 공유지(共有地, the commons)와 다르다. [본문으로]
  18. [옮긴이] http://www.sierraclub.org/ [본문으로]
  19. [옮긴이] http://www.citizen.org/Page.aspx?pid=183 [본문으로]
  20. <과학 및 환경 건강 네트워크>(the Science and Environmental Health Network)가 사전예방원칙의 주된 옹호자이다. 이 단체는 2004년 5월 13-16일에 the Tomales Bay Institute 및 the Johnson Foundation와 협력하여 “커먼즈, 공적 신뢰 및 사전예방원칙”에 관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본문으로]
  21. [옮긴이] 이렇게 그냥 ‘다스리다’라는 의미로 ‘governance’를 사용할 때에는 그냥 ‘거버넌스’로 음역해놓기로 한다. ‘통치’도 ‘협치’도 번역어로서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2. Wendell Berry, Life Is a Miracle: An Essay Against Modern Superstition (New York: Perseus Books, 2000), 40. [본문으로]
  23. 예를 들어 Carol M. Rose, “The Comedy of the Commons: Custom, Commerce and Inherently Public Property,” chapter 5 in Property and Persuasion: Essays on the History, Theory, and Rhetoric of Ownership (Boulder, CO: Westview Press, 1994) 참조. [본문으로]
  24. Steven Weber, The Success of Open Source Softwar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본문으로]
  25. [옮긴이] 동료생산, 동등계층생산, 친구공동생산 등의 번역 사례가 있으나 여기서는 단어 자체보다는 전체로서의 그 의미를 살려서 ‘자율생산’이라고 옮긴다. 위키피디아 : “Peer production (also known by the term mass collaboration) is a way of producing goods and services that relies on self-organizing communities of individuals who come together to produce a shared outcome. The content is produced by the general public rather than by paid professionals and experts in the field.” 【참고】 여기서 ‘peer’는 ‘동료’ 혹은 ‘친구’라기보다는 ‘지위가 동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보수를 받는 전문가들을 배제한 대중의 구성원들 자체를 가리킨다. 다른 예) 마그나카르타의 정신에 따르면 배심재판에서 배심원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peers’여야 한다. “trial by jury of peers” [본문으로]
  26. 예를 들어 Yochai Benkler, “Coase’s Penguin, or Linux and the Nature of the Firm,” Yale Law Journal 112(2002):369–446, available at http://www .benkler.org/CoasesPenguin.html; and “Sharing Nicely: On Shareable Goods and the Emerging of Sharing as a Modality of Economic Production, Yale Law Journal 114(2004):273–358, available at http://benkler.org/SharingNicely.html. 참조. [본문으로]
  27. [옮긴이] A folksonomy is a system of classification derived from the practice and method of collaboratively creating and translating tags to annotate and categorize content;[1][2] this practice is also known as collaborative tagging,[3] social classification, social indexing, and social tagging.(Wikipedia) [본문으로]
  28. [옮긴이] ‘메타 태그’(meta tag)는 웹페이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태그이다. 일반적인 HTML 태그들과는 달리 메타 태그는 페이지의 디스플레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누가 페이지를 만들었고 얼마나 자주 업데이트되며 무엇에 관한 페이지인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키워드들이 내용을 나타낸다. http://www.webopedia.com/TERM/M/meta_tag.html [본문으로]
  29. 메타 태깅과 사회적 소프트웨어는 2005년 Esther Dyson’s PC Forum에서 주된 테마들이었으며, 소셜 네트워킹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들―Howard Rheingold (www.smartmobs.com), Clay Shirky (www.shirky.com), 그리고 Corante’s Many 2 Many (http://www.corante.com/many)―에서 맹렬하게 논의되는 주제였다. [본문으로]
  30. 예를 들어 Jennifer Washburn, University Inc.: The Corporate Corruption of Higher Education (New York: Basic Books, 2005); Seth Shulman, Trouble on the“Endless Frontier”: Science, Invention, and the Erosion of the Technological Commons (Washington, DC: New America Foundation and Public Knowledge, 2002); David Bollier, Brand Name Bullies: The Quest to Own and Control Culture (New York: Wiley, 2005) 참조. [본문으로]
  31. [옮긴이] 최종사용자(an end user)가 소프트웨어가 들어있는 비닐포장을 뜯으면 사용자계약조건에 동의한 것으로 보는 방식. [본문으로]
  32. 옮긴이] 컴퓨터 화면에서 버튼이나 하이퍼링크를 클릭하면 사용자계약조건에 동의한 것으로 보는 방식. “click-wrap”이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33. 예를 들어 The Common Property Resource Digest, March 2005 (issue 72), available at http://www.indiana.edu/~iascp/e-cpr.html; David Bollier and Tim Watts, Saving the Information Commons: A New Public Interest Agenda in Digital Media (Washington, DC: New America Foundation and Public Knowledge, 2002) 참조. [본문으로]
  34. 이 방면에서의 발전과 관련된 권위 있는 자료출처는 Peter Suber가 편집하는 Open Access News로서 http://www.earlham.edu/~peters/fos/fosblog.html에서 볼 수 있다. [본문으로]
  35.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에 관한 더 많은 정보는 http://www.creativecommons.org에서 볼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