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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적인 것에 관하여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 본 것


다중의 경우처럼 공통적인 것은 두 개의 시간을 가진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하나는 존재론적 시간, 즉 존재 자체의 특성이다. 즉 존재를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 및 그로 인한 (그 부분들의)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몸들의 조우.

다른 하나는 역사적 시간이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에 새롭게 형성된 조건과 연관되며 기존의 그 어떤 형태의 공동체들(혹은 그것을 자임한 것들)이 가졌던 것과도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이 성격은 다음으로 구성된다.
 
1. 규모의 전지구성.
과거의 공동체들에게는 항상 외부가 있었던 반면에 이제는 외부가 없다. 교환행위, 교환가치를 발생시킨 그 행위는 처음에 외부의 존재로 인해 가능했다. 그리고 외부가 관계의 풍부화를 가져오는 한에서 교환의 전면화는 문명화하는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한편으로는 과거와 같은 형태의 외부(초월적 형태의 외부)는 사라진다. 그러나 권력화된 사회적 관계(소외)의 형태로 모든 원자화된 개인들을 감싸는 공기와도 같은 새로운 외부가 등장한다(선험적 외부). 이 새로운 형태의 외부는 자본과 그 운명을 같이 한다.

2. 무매개성, 직접성

외부가 사라진 지금 모든 것은 내적 연관이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전지구적 생산기계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발생한다. 이는 권력화된 사회적 관계인 자본을 안에서부터 붕괴시키는 잠재력을 가진다. 과거에 자본이 나름 대로 외부와의 관계를 맺어주는 기여를 했다면, 이제 자본은 내적 연관에 벽(라이센스, 특허권, 지적 재산권 등으로 생산기계에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존립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그 존재 자체가 이러한 벽이 되어간다.

3. 특이성
맑스에 따르면 모든 사용가치는 모두 이질적이며 같은 척도로 잴 수 없다. 자본은 이를 가치(교환가치)로 덧코드화함으로써 척도에 종속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러한 덧코드화의 조건은 화폐에 의한 매개이다. 이 매개는 맑스에 따르면 국지적 성격을 띠는 사용가치에 사회 전체와의 연관을 부여한다. 이제 탈근대에 형성된 전지구적 규모의 사회적 결합은 화폐에 의하지 않고도 하나의 생산행위나 생산물에 세계 전체와의 연관이  담기도록 한다. 따라서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특이성이 발생한다. 모든 생산요소들과의 연관 속에서 발생하는 특이성. 마치 시의 경우 전체의 맥락에서 특정 단어나 어구의 특이한 의미가 생성되는 것처럼. 이 특이성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 연속적 변이, 연속적 재특이화로 열려있다. 따라서 공간적 외부가 사라진 대신 시간적 외부가 열린다. 이는 길이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측정이 불가능한 ‘때’의 시간이다.

4. 주체성
자본은 생산주체와 생산의 객관적 조건의 분리에 기반을 둔다. 이 주객분리가 바로 원자화된 근대적 개인의 조건이다. 근대적 개인에게서는 주체성이 객체와 분리되어 있으며 화페의 매개를 통해서만 결합된다. 따라서 그러한 매개의 불필요함은 근대적 자아의 조건을 무너뜨린다. 이제 주체와 객체는 이미 결합되어 있다. 오직 자본과 기타 권력들의 위계화, 분할 등의 작업에 의해서만 분리된다.  이제 모든 생산은 잠재적으로 주체성의 생산이며 새로운 삶형태의 생산이다. 삶이란 결국 주체성의 존재방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맑스가 읽어내는 자본의 사명은 자본주의 이전의 공동체 사회에서와는 달리 사회 전체와의 연관을 매개 없이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개인' 혹은 자유로운 개인성의 잠재적 조건을 생산력 발전의 측면에서 형성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더 덧붙일 수 있다.

-- 공통적인 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 시대에 자본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주요한 지형이다.
-- 자본은 공통적인 것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며, 다중은 공통적인 것을 새로운 삶형태를 창조하는 활동(여기에는 저항도 포함된다)의 조건으로 삼는다.
-- 공통적인 것이 자본의 착취의 대상이 될 때 그 생산물은 탈특이화되어 측정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자본을 구성하는, 척도에 종속된 가치.
-- 다중이 공통적인 것에 기반을 두어,  공통적인 것 속에서 생산할 때 그 특이한 생산물은 측정불가능한 가치, 즉 초과이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삶형태의 창출을 구성하거나 그러한 구성으로 이어진다. 
-- 자본이 아무리 노력해도 공통적인 것이 자본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 다중이란 공통적인 것이 가진 창조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만남의 방식이며, 미리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특이성의 선을 따라서 탐구, 창안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