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의 새 책 Assembly(2017)의 77-83쪽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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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래로부터 볼 때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
‘아래로부터’(from below)는 실로 광범한 해방 기획들의 입각점이며 우리의 분석에서 발전시킬 관점이다.
베버 : 권력(Macht, power)은 지배(Herrschaft, domination)와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 그래서 전자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반면 후자는 명령이 복종되어야 한다. 여기서 정당화의 문제 혹은 어떻게 명령이 동의에 의해 구속되어야 하는가의 문제, 명령이 복종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필요가 나온다. 이것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생각과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역행하는) ‘현실주의적’ 버전의 마키아벨리주의를 형성한다.
결국 베버는 관계로서의 권력이라는 정의를 무너뜨린다. 명령이 복종의 예시(豫示, prefiguration)로 찬양되면 저항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렌트 또한 유기적 권력관을 반박하려고 시도한다. 열려있는 정당성. 이 열려있음이 민주주의를 특징짓는다. 폭정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토대를 두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혁명, 항상적 변이, 구성적 힘을 말한 사람이다. 이에 반해 국가이성은 폐쇄된 권위의 기능이자 그것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렌트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긍정적 언급을 반복적으로 하며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사라지는 듯이 보인다. 권력은 주체들의 손에 쥐어지며 아렌트에게 ‘진정한’ 실천은 공적, 정치적 행동이다. 능동적 삶은 시민적 삶에 완전히 관여하며 그 관계에서 무력해지지 않고 “inter-esse”(상호 존재하기/관심)를, 인간의 상호작용을 향한다.
근대적 권력정의로부터 나오는 데에는 베버와 아렌트로 충분하지 않다. 궁극적으로 일자와 초월이 승리한다. 아렌트가 제시하는 것은 군주에의 조언자로서의 마키아벨리라기보다는 ‘섭리의 꽁피당’(레이몽 아롱)이다. 베버가 제시하는 것은 권력의 정당화 메커니즘들이며 대안적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관료적 기능의 기계적·객관적 성격이 나름의 주체성 생산 형태를 띠지만, 베버는 정동, 열정, 혁신조차도 추방한다.
마키아벨리의 본질적 요점은 권력을 관계로서 볼 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 탄생하는 것으로 보는 데 있다. 이는 인식론적 입장일 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를 행하여 구축하는 정치적 궤적이다. 이것이 다중의 경로이다. 이 경로는 스피노자가 『정치론』에서 말했듯이 민주주의를 자유의 도구로서 해석하는 동시에 자유를 민주주의의 산물로서 제시한다.
푸꼬가 근대의 지배적 권력관에 대한 도전을 현대적 세계의 조건으로 옮겨놓을 수 있게 해준다.
1979년 강의(『생명관리 정치의 탄생』)에서의 방법론 설명: 주권자, 주권, 민중(민), 신민, 국가, 시민사회(the sovereign, sovereignty, the people, subjects, the state, and civil society)와 같은 관념들을 우선적이고 본래적인, 그리고 이미 주어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것이 매우 철저한 아래로부터의 경로를 정의한다. 진실은 새로운 존재를 생산하는 창조적(poietic) 지형에서 구축된다. 예를 들어 해방 투쟁은 자유의 자동사적인 실천, 진실을 창조하는 장이다.
촘스키와의 토론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행동이 정의에 기반을 둔다는 촘스키의 발언에 대한 푸꼬의 대답 : “저는 스피노자 식으로 당신에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계급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그 전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계급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역사상 최초로 정치적 힘을 갖기(take power) 1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배계급의 권력을 전복할 것이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는 그런 전쟁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론가들이 푸꼬의 아래로부터의 힘(권력)이라는 인식론의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푸꼬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것과 같은 전체주의적인 권력관―여기서는 주체가 저항을 허용받지 않는다―을 제안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푸꼬의 1960년대와 70년대 저작과 관련해서도 사실이 아니다. 푸꼬는 이 시기에 강한 구조주의적 틀에도 불구하고 점차적으로 구조주의적 제한들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첫째, 그는 모든 개체화하는 작업, 데카르트적 주체성을 되풀이하는 모든 작업에 맞서 논쟁을 수행함으로써, 그리고 그 다음에는 주체(subject)의 ‘해체’(destitution, 탈구성)를 통해 이를 성취했다. 이는 ‘우리’—나와 우리의 관계—를 생성(becoming)으로서만이 아니라 다양체(multiplicity)의 실천으로서 탐구하는 것으로서 제시된다. 푸꼬가 70년대에 미시권력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 권력 개념을 일반화하는 새로운 차원을 연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그것에 전체주의적인 형상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 형상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관계에 기반을 둔 권력관이라는 점이다.
푸꼬의 작업은 1970년대의 주된 정치적 긴장이라는 상황에 위치시켜 파악해야 한다. 그의 작업은 공장에서 광범한 사회적 지형으로의 사회적 적대의 확대를 쫓았으며 투쟁의 주체화의 새로운 형태들을 분석했다. 푸꼬는 완전히 이 작업에 몰입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해 맑스를 넘어갔다. 물론 (일부 활동가들이 채택하는 바대로) 맑스주의의 경제주의적 버전들을 넘어가고 맑스주의를 사회적인 것 안에서 변용시켜 회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바로 이것이 ‘삶정치’ 개념이 궁극적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경제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양태들에서, 주체적인 것에서, 주체화에서 다시 채택하는 것이다. 1970년대의 운동에서 발전했던 것은 푸꼬의 강의들에서, 혹은 그것과 병행하여 반영되었다. 이 강의는 권력을 바라보는 구조주의적이고 경제주의적인 틀과의 단절을 명시적으로 나타냈다.
그러면 ‘아래로부터’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위”에 있는 자들과의 투쟁을 통해서 그 지식이 변형되는 종속민의 입장에서 권력을 정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 있는 사람이 사회 전체에 대해서 더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공통적인 것을 구축하는 다중의 사업의 토대가 될 수 있다. 둘째, ‘아래로부터’는 또한 정치적 궤적을 지칭한다. 즉 명령을 전복할 힘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대안적 사회를 건설할 능력을 가진 제도적 기획을 지칭하는 것이다.
♣
- [옮긴이] ‘take power’는 일반적으로 ‘권력을 잡다’라고 옮기는데, 내용에서 보다시피 푸꼬가 지향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다. 그래서 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정체적 힘’이라고 옮겼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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