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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존재론의 정치학 ― 인류학의 입장들

* 아래는 오픈 액세스 저널인 Cultural Anthropology2014113일자로 실린 Martin Holbraad, Morten Axel Pedersen and Eduardo Viveiros de Castro, “The Politics of Ontology: Anthropological Positions”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논문은 말의 세밀한 뉘앙스의 차이까지도 주요한 표현의 요소로 삼기 때문에 인류학 분야의 논의의 맥락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우리말로 옮기기가 상당히 까다로우며 따라서 번역상의 오류나 미흡함이 충분히 가능함을 미리 밝혀둔다





존재론의 정치학 인류학의 입장들

 

홀브라드페더슨, 데 카스트루


처음 보기에 존재론정치학은 희한한 짝인 듯 다가온다. 존재론은 본질을 상기시키는 한편 정치학은, 현대의 민주적·다문화적 시민들이 보통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본질을 해체하고 그 대신에 세계를 구성하는 인간집단의 능력들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를 사회적으로 구축한다는 생각 자체가 특별한 존재론의, 그것도 강력한 존재론의 사례를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는 또한 정치적으로도 강력하다는 의미를 포함시킨다. 그러나 인류학자들로서 우리는 약자의 힘’(powers of the weak)에 맞추어져 있다.[각주:1] 즉 힘의 차이(정치학)와 차이의 힘(존재론) 사이의 많은 복합적인 연관들그 가운데 일부는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연관들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의가 적절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사회과학 및 그와 유사한 분야들이들 각각은 특정의 방법론, 분석상의 지침, 도덕적 비전과 연관되어 있다에서 존재론과 정치학이 서로 연결되는 세 가지 상이한 방식을 대별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전통적인 철학적 존재론 개념으로서 여기서 정치학현 상태(how things are)에 대한 단일한 절대적 진실을 발견하고 보급하라는 암묵적인 지침 형태를 띤다. 이러한 입장 및 기타 본질주의들’(essentialisms)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으로서, 이 비판은 모든 존재론적 기획들을 회의론적으로 해체함으로써 그 내밀한 정치적 성격을 드러내며 마지막으로는 해체의 비판적 정치학을 마땅히 되어야 하는 상태(how things should be)에 대한 자신의 견해로서 긍정한다. 구체적인 실천들에서 현실화되는 실존형태의 다양성이라는 인류학적 존재론 개념으로서, 여기서는 정치학이 될 수 있는 상태(how things could be)우리가 이해하는 바로는 엘리자베스 포비넬리(Elizabeth Povinelli)(2012b)다른 존재양태’(the otherwise)이라고 부르는 것를 위해 이러한 다양한 잠재태들을 비()회의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된다.


다른 존재양태가 민족지학(誌學)[각주:2]에서 어떻게 명확하게 서술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민족지학의 서술이 모든 문화적 번역들처럼 필연적으로 변형 혹은 왜곡의 요소를 포함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일정한 인류학적 분석은, 하나의 고립된 사회적 질서 혹은 문화적 총체를 다른 것으로 투명하기 전사하기는커녕 일정한 고의적이며 성찰적인 생산적 오해”(Tsing 2005)에 의존하여 그 옮김이나 비교상이한 맥락들, 영역들, 규모들 사이의 비교만이 아니라 그 내에서의 비교를 포함한 것를 수행하는 통제된 다의화多義化”(controlled equivocation)(Viveiros de Castro 2004)에 해당한다. 존재론적 전회(the ontological turn)를 다른 방법론적·이론적 지향으로부터 구분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즉 그것이 다른 방법들보다 더 진지하게사람들과 사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의심스러운 전제가 아니라[각주:3] 예술가가 재료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어포던스(affordance)로부터 새로운 형식을 끌어낼 때와 비슷하게[각주:4], 우리가 공부하는 것을 관통하면서, 사물의 어두운 측면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에의 접근을 제공하는 형태들과 힘들을 풀어내려는 포부와 바람직하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인류학에서의 존재론적 전회가 민족지학적 차이 혹은 타자성’(alterity)에 대한 연구를 그 트레이드마크의 하나로 만들었지만, 진정한 관심은 사물들 사이의 차이에 있다기보다 사물들 내의 차이에 있다. 존재론의 정치학은 개인들과 사물들이 어떻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핵심으로 한다(Holbraad and Pedersen 2009; Pedersen 2012b). 우리가 이해하는 바의 인류학에 관한 한, 존재론은 존재’(Being)를 스스로와 다른 것으로서, 이러저러한 존재()’에 내재하는 타자로서의 존재()’로서, 비교론적인 방식, 민족지학에 기반을 두면서도 초월적인 방식으로 도출한다. 존재론 인류학은 존재론으로서의 인류학이다. 존재론들의 비교가 아니라 존재론으로서의 비교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 존재론적 전회의 핵심이다. 그것은 주어진 일단의 민족지학적 자료에 존재하는 개념적 어포던스들로 실험을 함으로써 (Holbraad, 근간) 다른 존재양태를 가시화하려는 낙관적 (비회의론적) 희망으로 고안된 서술의 테크놀로지(Pedersen 2012a)이다. 우리는 그러한 자료를 어디에서나, 언제나, 누구에게서나 끌어올 수 있다고 힘주어 주장한다. 존재론적 분석에 쓰일 수 있는 실천들, 담론들, 인공물들에는 한계가 없다. 실로, 이런 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독특하게 비()규범적 혹은 반()규범적 입장을 함축하며, 이 입장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심대하게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선, ‘현재 존재하는것에 대한 언명들이나 존재해야 마땅한 것에 대한 명령들에 대한 대안을 가정법으로 제시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행동이다. 그것이 대안적 가능성들(‘세계관들)에 대한 단순한 보고들의 그럴듯한 상대주의로부터 시원하게 벗어나서 대담하게 다르게 존재하는것에 온전한 존재론적 무게를 실어서 그것을 실재적 대안으로서 생명력 있게 만드는 데로 나아가는 만큼은 급진적인 행동이다. 예를 들어서 상대주의자는 이러저러한 민족지학적 맥락에서 시간은 순환적인데 과거나 항상 돌아와서 현재가 되는식이라고 보고한다. 이는 물론 기발한 생각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말이 되지 않는다. 과거 즉 지나갔다는 것은 바로 현재로 돌아오지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로 돌아오는 과거는 결코 과거가 아니다. (결혼한 총각은 총각이 아닌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와 달리, 존재론적 지향을 갖는 인류학자는 일종의 상대주의적 터빈처럼[각주:5] 이러한 다의적·환기적 형식을[각주:6] 시간 개념 자체를 실험대상으로 하는 민족지학적으로 통제된 실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순환적 시간을 실재적 실존형식으로 만드는 식으로 과거’, ‘현재’, ‘존재등을 다시 개념화한다. 이런 가정법적인 존재 가능성의 실험에서 강조는 가능성만큼이나 존재에 두어진다. ‘순환적 시간을 상상이나 해봐!’라고 상대주의자는 놀라워한다. ‘맞아, 그리고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양태가 여기 있어라고 존재론적 인류학자는 답한다.

 

더 나아가 그러한 존재지학적’(ontographic)(Holbraad 2012) 실험들이, 그 삶이 이러저러한 식으로 지배적인 질서(늘 휘발적이고 격렬하게 뒤섞이는 국가, 제국, 시장)와 대립하는 민족들과의 민족지학적 접촉에 의해 가속화될 때, 그때 존재론의 정치학은 그것을 불러일으킨 민족들의 정치학과 그 핵심부에서 공명한다. 그런 경우에 존재론적 지향의 인류학적 분석은 인류학자들이 연구하는 민족이 관여된 정치적 동학을 논리적으로 조건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 동학에 의해 구성되고 그 동학과 도덕적으로 연루된다. 이 동학에는 그 민족 자신들이 택하는 정치적 입장들이 포함되는데, 정치 자체의 가능한 양태에 대한 입장도 다른 것 못지않게 포함된다.

 

인류학에서 일어난 존재론적 전회와 관련된 모토 가운데 실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그리고 비판되는) 것 하나는 저 악명 높은 인류학은 세계의 민족들의 존재론적 자결(自決)의 과학이다라는 말과 그에 부수되는 것들이다. 즉 이 분야의 사명은 사유의 영원한 탈식민화를 증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Viveiros de Castro 2009, 이 주장의 초기 형태를 보려면 Viveiros de Castro 2013 [2002] 참조). 이러한 맥락에서 불식시켜야 할 첫째 (비생산적인) 오해는, 이것이 세계 열강들과 맞서 토착민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과 동의어라는 생각이다. 전 세계에 있는 토착민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세력에 맞선 싸움에 동참하는 데에는 인류학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상당한 정보가 있고 꽤 훌륭한 사람이면 충분할 것이다. 반대로, 인류학적 상대주의와 낡은 전문가적 회의주의는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데 대한 변명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민족들의 존재론적 자결이라는 생각은 민족 본질주의, 피와 땅 원초주의 및, 기타 형태의 사회문화적 리얼리즘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민족들의 존재론적 자결은 민족에게 존재론적인 것을 되돌려주는 것을 의미하지 존재론적인 것에 민족을 되돌려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자의 자결로서의 존재론의 정치학은 타자의 사유와의 대면에서 모든 사유가 탈식민화되는 것, 즉 사유 자체를 늘 이미타자의 사유와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학의 존재론이다.

 

셋째, 타자의 자결이라는 생각은 인류학자들의 인식론적 윤리의 근본 원리가 서술하고 있는 민족에게 항상 출구를 남겨라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많이 설명하지 말라. 타자의 사유에 내재한 가능성들을 현실화하려 하지 말라. 그러나 이 가능성들을 타자의 공상으로 치부하지도 말고, 그 가능성들이 자신에게도 동일한 실재를 획득하리라고 공상하지도 말며, 다만 그 가능성들을 가능한 것으로서 막연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하라(이것이 사유의 영속적인 탈식민화라는 어구에서 영속적인이라는 어구가 의미하는 바이다). 그 가능성들은 동일하게 현실화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대로는 아니다. 오로지 타자로서그렇게 된다. 타자의 자기결정은 자기의 타자결정이다.(The self-determination of the other is the other-determination of the self.)

 

이로써 우리는, 인류학 및 그와 유사한 분야들에서 존재론적 지향의 접근법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유망성과 관련된 마지막 논점으로 이르게 된다. 이 유망성은, 그 접근법들이 특정의 정치적 목적 혹은 국가비판의 지속적 필요 및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고성향과 어느 정도로 친화적인 관계에 있느냐와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그 접근법들의 작동 바로 그것에 수반되는 형태의 정치를 실행하는 능력과의 관계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논점이다. 이런 식으로 파악되면, 존재론적 전회는 외적으로 정의되는 정치적 목적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정치적 목적이다. 지적 삶의 정치적 효율에 대한 계속되는 논쟁들예를 들어 20세기에 있었던, 공산당들의 정치적 전투성 요구에 대한 맑스주의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입장(아도르노, 사르트르, 마그리트 등)을 어느정도 반복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문제는 존재론적 지향을 가진 분석들이 그들이 포함하는 사유 형태 자체를 정치적으로 만드는가,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되기가 인류학적 사유 양태 자체의 내재적 속성이 되는가이다. 만일 그렇다면, 존재지학의 정치학은 어떤 미래를 증진하는 것을 돕는 방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 실행의 과정에서 미래를 형상화하는”(Krøijer 근간) 방식에도 있는 것이다.

 

그런 주장의 주된 전제는 (후설Edmund Husserl적 의미의) 코기토와 같은 필연성(cogito-like apodeicticity)과 유사할 것이다. ‘사유하는 것은 달라지는 것이다.’ 스스로 차이를 내지 않는 사유는 사유가 아니다. 사유는 하나의 위치(입장)’에서 다른 위치(입장)로 이동하는 형태를 띤다. 따라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유가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는 존재론적 신념이 아님에 주목하라. (예를 들어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의 최근[2011]존재적 원리”ontic principle와 비교해보라. 이는 매우 유사하지만, 형이상학적 주장이라는 철학적 기조를 띠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사유의 논리적 형식의 진술로서 제시된다. 크리츨리(Simon Critchley)적 의미의 현상학인데 [2012, 55], 이는 더욱이 자신의 발화 가운데 자신을 현실화하는 한에서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소전제는 (더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서) ‘달라지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적 행동이다라는 생각이다. 이는 권력, 지배, 권위와 같은 논란의 여지없이 정치적인관념들은 차이의 가능성과 그 통제에 대한 상대적 입장들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더 직접적으로 (물론, 거칠게) 말하자면, 지배는 다를 수 있는 능력을 통제하는 것이다. 즉 타자성에 한계를 가하는 것이며, 따라서 바로 그 사실로 인해서 (즉 위의 사유하는 것은 달라지는 것이다라는 말의 내적 함축에 따라) 사유에도 한계를 가하는 것이다.

 

만일 이 두 전제가 받아들여진다면, 특정 종류의 정치학이 존재론적 전회에 내재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존재론적 전회가 바로 민족지학적 현장작업이 회귀적으로 개념적 창조성과 실험의 형식들로 변이되는 것을 주축으로 삼는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면, 존재론적인 성향의 인류학은 지속적으로 차이 혹은 타자성 그 자체의 생산을 지향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분석의 이 수준에서는, 관여할 수 있는 정치적 목표들이 무엇이든, 인류학은 그 작용의 차이 그 자체를 전제하고 차이를 실험적으로 행하는시도인 한에서 존재론적으로 정치적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반()권위적인 인류학으로서, 기존의 사유 형태들을 타자성 그 자체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압력을 받도록 하고 아마도 변화하도록 하는 유리한 대안적 시각들을 발생시키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는다. 우리는 이 지적 노력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만일 이로써 우리가 위에서 말한 의미의 영속적인혁명을, 즉 가능한 것, ‘존재할 수 있는것을 무한정 지속시키는 정치를 의미한다면 말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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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wers of the weak : 피억압자와 피착취자가 가진 힘을 말한다. “powers of the weak”은 제인웨이(Elizabeth Janeway)의 저서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저작에서 제인웨이는 강자가 부과하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을 약자가 가진 가장 의미심장한 힘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민족지학’은 ‘ethnography’의 옮김으로서, 문화기술지(文化記述誌) 또는 민속지학(民俗誌學)이라고 옮기기도 한다. [본문으로]
  3. [원주] 물론, 다른 존재론들을 진지하게 사실의 일로서 받아들이는 저 ‘다른 이들’에게 ‘현 상태’인 것이 존재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이 다른 존재론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될 수 있는 상태’라는 정치적 함축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다소 논란의 여지없이 주장할 수는 있겠다. [본문으로]
  4. ‘어포던스’(affordance)는 주체가 특정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객체가 ‘제공’하는 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문손잡이는 돌리기나 밀기를, 끈은 잡아당기기를 ‘제공’한다. 예술가는 재료가 제공하는 특정의 표현력을 창작행동을 통해 현실화한다. [본문으로]
  5. 터빈은 유체나 기체의 순환을 이용한 장치이다. 시간의 순환성을 이러한 유체 혹은 기체의 순환에 비유한 것이다. [본문으로]
  6. 이러한 다의적·환기적 형식 : 저자들은 “this form of e(qui)vocation”이라고 썼다. “e(qui)vocation”은 ‘equivocation’과 ‘evocation’을 겹쳐서 쓴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