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데이빗 볼리어가 최근에 나온 책 커머닝의 패턴들(Patterns of Commoning)에 관하여 웹진 셰어러블(Sharable)의 캣 존슨(Cat Johnson)인터뷰한 기사를 옮긴 것이다. 다소 모호한 부분들이 있어서 세부의 정확성보다는 내용전달의 손쉬움에 초점을 두었다. 정확하고 세밀한 이해를 원하는 사람은 아래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셰어러블의 기사에는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Unported 라이선스가 적용된다.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www.bollier.org)에도 일부가 올려져있다.


 

 

(문) 셰어러블 : 이 책에서 당신과 질케(Silke)는 커머너로서 생각하고 배우고 행동하는 것을 커먼즈 운동의 핵심으로 보고 그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요?

 

(답) 볼리어 : 그것은 우리가 당연시해왔던 몇몇 이분법들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집단과 개인, 합리와 비합리 등등의 이분법들이죠. 커먼즈에서는 이것들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유기적 온전체로서의 커먼즈에 대해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커먼즈를 부품들로 해체하거나 해부할 수 있는 기계인 것처럼 보면 안 됩니다. 커먼즈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바로 이것, 즉 그 살아있음이 우리가 연구할 바인 것입니다.

 

전통적인 근대 과학은 살아있음을 탐구하기를 거부합니다. 근대 과학은 살아있는 인간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대지에서 살아있는 인간이 되는 것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는 많은 환원론적 범주들을 만들어 냅니다. 내 생각에 커먼즈는 살아있는 종류의 관심사들에 응하고 싶어하며, 특히 진부한 학술계 사람들이 사용하고 싶어하는 많은 전통적인 지식의 상자들에는 부합하지 않습니다.

 

(문) 이 책에서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점 하나는 하향식으로 움직이는 정책입안자들과 전문가들은 커먼즈를 디자인하고 구축하지 못하며 커먼즈가 번성하리라고 기대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유기적 커먼즈는 하향식으로 제조된 커먼즈와 어떻게 구분되나요?

 

(답) 기성 제도의 후원을 받는 커먼즈들에서는 아래로부터의 헌신·공유·공동창조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이런 커먼즈들은 외부에서 연출되는 다른 누군가의 드라마에 출연할 뿐이며, 사람들 스스로에게서 나오며 사람들의 이익, 욕구, 내적 삶에 복무하는 창조적 분출의 표현과는 반대됩니다.

 

제도들은 민중의 내적 욕구와 열망에 응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커먼즈는 그럴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말한 살아있음의 본질입니다. 커먼즈는 스스로를 복제하는 고유한 에너지와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섬광처럼 매력을 발휘합니다. 이는 매우 특별합니다. 이는 커먼즈가 민중의 실질적 욕구를 표현하는 그 순간에 살아있는 특유한 사회적·역사적·문화적 현상이라는 사실에 담겨 있습니다.

 

이는 몇몇 사람들이 커먼즈를 이해하기 위해서 행하는 자원할당 유형의 분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자원분석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문) 이  책에는, 삶 혹은 생산에서 커먼즈로서 작동하도록 구축될 수 없는 부분은 거의 없다는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당신은 지난 두 책[각주:1]을 통해 커먼즈 기획의 놀라운 스펙트럼을 제시해왔습니다. 커먼즈 기반의 경제 혹은 세계는 당신이 보기에 어떤 것입니까?

 

(답) 이건 어떤 면에서는 3살짜리 아이가 50살이나 80살이 되면 어떻게 보일지를 묻는 것과 같군요.

 

삶의 경험 가운데에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예측하려면 긴 전개과정이 펼쳐져야 합니다.


 

일단 이 말을 해두고요. 내 생각에 이것은 어떤 중앙의 권위가 그것을 디자인하고 그런 다음에 예산을 얻고, 그 다음에 구축하기 시작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내 생각에 이는 생물학적인, 혹은 진화적인 전개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많은 소규모의 원칙들과 동학이 이 과정을 활성화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거대한 펼쳐짐이자 드라마입니다. 혹자는 커먼즈의 규모를 키워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규모라는 단어는 실제로 위계구조를 표현하는 용어임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복제하고 연합하는 것이 더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과는 다른 구조인데,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지역에 헌신하면서도 더 넓은 유대와 지원을 천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상이한 디지털 부족들이 있는 인터넷에서 이런 것을 봅니다. 거기에는 중앙 권위가 없습니다. 비록 때로는 다음 수준으로 가는 것을 돕는 기반시설을 필요로 하지만 말입니다.

 

많은 부분을 한데 묶어줄 것은 새로 출현하여 서로를 발견하기 시작한 특정의 윤리와 문화일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많은 활동가들, 커머너들의 모임에 참가하면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를 아는 데서 오는 쾌활함과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상이한 영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윤리적 원칙들과 문화적 관심사들을 공유합니다.

 

(문) 패턴의 관점에서 커먼즈를 보는 접근법은, 커먼즈들이 복합적이고 살아있는 시스템들임을 인정하며, 커먼즈들이 생겨나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존중합니다. 이 접근법은 또한 이 패턴들이 우리의 문화적 유산이라는 사실을 수용합니다. 이런 각도에서 커먼즈를 연구하는 것이 주는 이익은 무엇일까요?

 

(답) 이 접근법은 커먼즈의 실질적인 인간적 복합성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에 도달하지 못하는 환원론적인 범주들이나 모델들로 분해하지 않고 포착하게 해줍니다. 나는 양자택일적 태도를 취하고 싶지 않습니다. 커먼즈에 관한 많은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모델구축이 포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풍부한 실재가 존재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원래 그대로의 일화(逸話)와 과도하게 추상적인 모델들 사이에 스윗스팟이 있습니다. 패터닝(patterning)은 이 반복되는 형식들 가운에 일부를 포착하는 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적 작업의 결과를 위에서 아래로 실재에 부과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으로서, 아래로부터 위로 작동합니다.

 

(문) 이 책은 커머닝과 커먼즈의 더 풍요로운 패턴 언어의 발전이 개시되기를 바라면서, 커머닝의 패턴들을 서술하는 첫 걸음으로서 짜여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며, 커먼즈의 패턴 언어는 과연 어떤 것인가요?

 

(답) 질케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집필한 부분에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에서 툭 튀어나와서 반복될 수 있는 특정 테마들을 얻는 것이라는 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떻게 커먼즈를 보호하는가?’, ‘커먼즈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 특정의 법적 혹은 사회적 시스템들을 창조할 것인가?’와 같은 테마들이 있죠.

 

또 다른 패턴으로는 당신은 어떻게 그야말로 커먼즈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가?’, ‘비가시적인 커머닝의 차원들을 어떻게 가시화하는가?’가 있습니다. 질케는 우리 책의 많은 이야기들을 관통하며 반복해서 튀어나오는 황금의 실들과 같은 테마 패턴들 가운데 일부를 포착하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존의 경제적 분석틀의 일부인 경합과 배제[각주:2]


에 갇히지 말고 이 패턴들을 보고 커먼즈의 내적 기능을 더 세련되고 더 리얼리스틱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문) 이 책은 계획된 3부작 가운데 둘째 권입니다. 셋째 권은 어떤 책이 될까요?

 

(답) 아직 극히 초기 단계에 있는 다음 책은, 거시적 차원에서의 커먼즈가 가지는 의미, 즉 정책, 경제, 국가에 대해서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게 될 것입니다.

 

이번 책은 커머닝의 내적 차원과 몸으로 겪는 실재에 소규모로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다음에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함축되는 것들을 보고자 합니다. 법이 어떻게 변하여 커먼즈를 포용하게 될 것인가? 국가가 커먼즈 중심의 사회를 허용하려면 그 역할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이것은 국제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것들이 우리의 셋째 권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1. The Wealth of the Commons와 Patterns of Commons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2. 경합과 배제 : 이는 이른바 전통적 경제학의 근본적 원칙인 ‘희소성’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희소성을 전제하면 한 사람이 어떤 재화를 차지할 때 다른 사람은 그 재화를 차지할 수 없게 된다. 이 희소성의 원칙은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생산물이 등장하면서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하는데, 자본은 지적 재산권으로 재화에의 접근을 막음으로써 (‘제2의 종획’) 가상의 희소성을 창출하는 식으로 위기를 넘겨가고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도도 minamj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