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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정치와 민주주의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화여대의 용감한 학생들의 용감한 행동 덕분에 신자유주의적 총장의 신자유주의적 의도가 일단은 저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에 그 대학의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대학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놓고 유치하게 티격태격하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측이 유포하여 비겁한데다가 머리까지 나쁜 교수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은, 학생들은 4년이면 졸업하기 때문에 학교에 훨씬 오래 붙어있는 교수들이 주인이라는 논리이다.

 

이 논리는 참으로 유치하다. 마치 꼬마들에게 아빠가 네 집 주인이니 엄마가 주인이니?’하고 물어본 데 대해 꼬마들이 엄마가 주인이예요, 엄마는 거의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아빠는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와요라고 답한 듯하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은 상호전제하는 존재인데 그걸 그렇게 갈라서 비교를 하다니, , 쯧쯧쯧. 그런데 이들이 그걸 알까? 배움의 원형은 원래가 독학이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 중 불필요한 잉여는 교수라는 사실을. 내가 다른 글에서 말한 아카데미 모델에 따르면 대학에서 교수들은 필요 없는 존재이다.

 

이런 식이 아니더라도 다른 식으로 대학의 주인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개인’(person)을 중심으로는 이루어지는 봉건적 사유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탈근대와 대안근대를 말하는 현 시기에도 이 봉건적 사유방식이 지배적이다. 사립대학의 자산의 주인은 사실 법적으로만 존재하는 법인이지 인간 개인(person)이 아닌데, 이것이 근대적 법인제도의 핵심인데, 한국은 여전히 인간 개인을 대학 자산의 소유주로 생각한다. (물론 사립대학의 경우에 해당하는데, 국립대도 법인화된다면 마찬가지가 된다.) 교육부인지 교과부인지 여하튼 교x부에 있는 관료들의 사고부터가 줄곧 그래왔고 대부분의 교수들 사이에도 이런 사고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우선 못을 박고 시작하자. 대학 자산의 주인은 법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개인 혹은 집단 가운데 그 누구도 대학자산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자산은 운영되어야 하고 그 쓰이는 방향과 방식이 결정되어야 한다. 법인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소유할 뿐이다. 그래서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실제적으로 주인이 된다. 현재의 현실에서는 때로는 이사장이 때로는 총장이 대학의 주인으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이사장은 대학 자산의 운영을 위임받은 이사들(trustees) 가운데 일 뿐이다. 말하자면 자산을 관리할 머슴들 가운데 왕머슴이다. 또한 총장은 대학에서 일어나는 연구와 교육을 지원하는 행정의 장이다. 따라서 역시 왕머슴이다. 왕머슴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주인(권력자) 행세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듯이, 왕머슴인 이사장과 총장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이 정도 이야기하고 이 가짜 주인들이 아닌 진짜 주인을 가려보자.

 

첫째, 자본의 관점에 보자. 자본의 관점이란 자본가가 주인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본이 주인이 되는 관점이다. (‘persaon’을 중심으로 사고하지 말자는 말을 기억하시라.) 맑스가 말했듯이 자본가들이란 자본의 인격화일 뿐이다. 아니, 더 재미있게 말하자면, 자본가들이란 자신이 가진 화폐 속에 잠재해있는 자본이 내리는 명령나를 증식하라!을 받아 충실하게 이행하는 머슴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행은 대부분 자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삼음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기업에서는 자본이 주인이기 때문에 기업의 자산을 자본가 개인이 자식들에게 개인 재산처럼 상속해서는 안 된다. 미국을 보면 자본주의의 규칙이 여기에 따라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민(賤民)자본주의의 영토인 한국에서는 기업의 자산을 자본가 개인의 후손들이 물려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참으로 비자본주의적이고 봉건적인 사고, 그러나 현실에서 막강하게 작용하는 사고이다.

 

그러면 대학의 자산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는 크게 셋으로 나뉠 것이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 설립자가 처음에 재단으로 출연한 자산 + 재단의 사업에서 나오는 이윤. 정부지원금. 이 가운데 는 앞에서 말했듯이 실제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법인의 것이므로 여기서는 무시해도 된다. 은 사실상 학생들의 존재로 인한 것이다. 이는 마치 정부의 복지정책이 노동자들의 특정 상태(실업, 불안정 고용 등)와 관련이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금은 세금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 누구도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역시 이 가장 지속적이고 길게 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는 원천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총장, 교수, 직원들은 대학 자산의 구성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며 그 자산의 일부를 받아 먹고사는 의존적 존재일 뿐이다. 세계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1088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은 학생들이 학자들을 고용하면서 시작했는데, 이 관계는 사실 지금도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등록금에서 교수 월급이 나오지 않는가.

 

다음 관점으로 넘어가보자. 사실 이 글을 쓰는 사람의 관점은 애초에 자본의 관점은 아니다. 물론 자본의 관점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원칙으로 삼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원칙으로 삼는 것은 곧 이야기할 관점, 민주주의의 관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대학의 주인은 어떤 개인들, 집단들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이다. 물론 제대로 이루어지는 교육과 연구이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화하는 교육과 연구이며, 늘 업그레이드되는 교육과 연구이고, 무엇보다 자유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노력의 일환이 되는 교육과 연구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들리는 말을 했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늘 열려있으며, 따라서 그때그때 결정되어야 한다. 이 결정에는 학생, 교수, 직원이 모두 각기 자신의 최선의 활력을 다해 참여해야 하며, 총창은 이러한 민주적 결정과정 전체를 주재하는 의장이 되어야 한다. 이는 그야말로 총회 중의 총회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구성하는 세 집단 가운데 현재 이러한 민주적 결정과정에 참여할 자격을 가장 잘 갖춘 것이 내 생각으로는 학생들이다. 그 품성 자체가 가장 민주적(비권위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대학들이 신자유주의화되면서 권력화된 학교측’(이사장, 총장, 처장들, 학장들 및 기타 교무위원들)에 너무 많이 종속되었다. 그리고 교수들은내가 27년 동안 겪어봐서 아는데다수가 (물론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 주인과 노예 두 위치밖에는 모르는 (학생에게는 주인, 학교측에는 노예) 협소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므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데서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대학의 운명은 역시 학생들에게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자체의 운명이 그렇듯이 말이다. “젊음을 해방시키면 그로써 삶을 해방시킨 것이다.”(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