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미국 텍사스대학(오스틴)의 경제학자 해리 클리버(Harry Cleaver)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원문은 단락구분이 되어 있지 않아 전체가 하나의 단락이다. 옮긴 글은 읽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 옮긴이가 적절한 지점에서 단락을 나누었다. ―정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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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본주의의 길고 어두운 밤은 더 어두워졌고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늘 그래왔던 바와 같다. 생각하고, 조직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 저항하고, 원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오바마가 그 이전 30년 동안의 노동자들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계속했음을 기억할 가치가 있다. (힐러리도 당선되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공격으로 말미암아 소득 및 부에서의 불평등이 크게 증가하고 금융사기가 처벌로부터의 전적으로 면제되었으며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복구되기를 원하는 모든 일자리들이 사라졌다. 일자리들은 복구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의 개호각(dog whistle) 메시징[옮긴이 주석: 개호각은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고 개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내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일반 대중에게 이해되는 것과는 다른 코드화된 정치적 메시지를 특정 집단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이용한 정치를 개호각 정치(dog whistle politics)라고 한다]과 보수조직들의 집회로 트럼프를 만들어냈다고 해서 공화당원들을 비난하지 말라. ‘미국의 꿈’을 죽이고 포퓰리즘적 반발을 유발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지지한 모든 자들을 비난하라. 트럼프는 바로 이 반발의 조류를 타고 백악관에 입성하고 있을 뿐이다. 이주민을 막을 장벽에 대한 트럼프의 울부짖음에 대해 말하자면, 오바마는 그 이전의 누구보다도 더 많은 이주민들을 감금했고/했거나 추방했다.
오바마는 또한 NATO를 러시아의 국경 바로 옆까지 밀고 가는 정신 나간 노력을 계속했다. 이로써 슬라브족의 편집증에 따른 불가피한 반발과 역공을 유발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푸틴에게 넘겨줄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혹은 가지도록 놔둘 것이다.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옛날에 우크라이나는 ‘작은 러시아’였다. 푸틴의 범슬라브주의는 과거 차르 시대의 범슬라브주의와 연관된다. 그는 다음으로 폴란드를 노릴 것인가? 어떻든 125년 동안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독일 사이에 나뉘어 있었으며, 독립된 국민국가로서 존재하기를 중지했다. 트럼프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누가 알까? 그런데 그 지역에서의 미국 정부의 정책은 아주 오랫동안 현명했던 적이 거의 없다.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 격화될까? <로 대 웨이드 건>(Roe vs Wade)의 사례와는 반대로? [옮긴이 주석: <로 대 웨이드 건>(1973)은 낙태 문제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획기적인 판결 사례이다. 대법원은 여성들이 낙태를 결정한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더 자세한 것은 다른 자료를 참조하기 바란다] 가능성이 꽤 있다(Likely).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 더 많아질까? 가능성이 높다(Probably). 힐러리가 감금될 것인가? 가능하다(Possibly). 지구온난화를 다루기 위해 취해진 몇 안 되는 조치들이 취소될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우리는 레이건이 기존의 규제들을 환경보호국이 시행하는 데 재정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 지점에 위치한 바 있다.
신나치와 KKK가 어두운 곳에서 몰려나와서 훨씬 더 위험한 존재들이 될 것인가?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뒤에는 그의 대안우파(Alt-right) ‘브레인 트러스트’가 있다. 비록 그 두뇌는 대부분 저열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더 자세하게 분석할 때인 것 같다. 또한 이전의 어두운 시대―노예제 시대, 스탈린 시대, 히틀러 시대, 모택동 시대, 기타 독재자들의 시대―에 일었던 저항을 다시 연구하고 그로부터 배울 때인 것 같다.
그런데 또한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은, 이전 시대와 달리 이제 우리는 저항과 투쟁의 국제적 네트워크들을 구축해 놓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소통·토론·조직화의 수단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자원을 한껏 사용하여 무엇이든 우리가 직면하는 것에 대응할 수 있다.
또한 부시 2세의 정권에서 과연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지를 자신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가치도 있다. 그때 지금과 마찬가지로 무지하고 무능한 대통령이 신보수주의적 권력기구의 도움을 받아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건설하려고 했다. 즉 미국을 냉전 이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은―체니, 럼스펠드 등은―비참하게 실패했다. 트럼프와 그의 일당들 또한 확실하게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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