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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

혼미불(昏迷佛)

혼미불(昏迷佛)

 

가끔 눈앞의 시야 중 일부분이 마치 물 뿌린 거울처럼 아니면 화면 중 일부를 섬세하게 모자이크 처리한 것처럼 혹은 일종의 아지랑이가 낀 것처럼 어른거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망막에 생긴 상처 같은 것이 허공에 투사되어서 보이는 헛꽃과는 다르다. 상처가 투사된 것은 늘 같은 위치라고 생각되는 곳에 생기지만, 내가 말하는 현상은 어느 곳에 언제라도 생길 수 있고 금세 사라진다. 과학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아마 눈 속의 액체의 특정 상태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되리라. (병적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삶의 관점에서 이것을 혼미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치 미륵불의 짝인 듯이 모시기로 했다. ‘혼미불이란 말은 꿈속에서 누군가가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말해준 이름이다. 나는 깨어서도 이것을 기억했고 잊지 않도록 적어놓았었다. (요즘 뇌에 열병이 생겼는지 꿈속에서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잦다. 글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깬 직후에는 거의 기억하지만 적어놓지 않아서 잊는다. 어떤 멜로디가 들리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특별히 악보 같은 식으로 적어놓거나 하지 않아서 거의 잊어버린다.)

 

혼미불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이것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혼미불이 나타나면, 아니면 상상 속에서 혼미불이 떠오르면, 나는 그 이전의 나의 전부 혹은 일부를 버리고 무언가 새로운 사유와 존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미래로 향해져 있기 때문에 나는 혼미불을 미륵불과 짝으로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혼미불은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에서 말한 어두운 전조(前兆)’(le précurseur sombre)(같지는 않겠지만) 유사하다.

 

상이한 내향적 힘들(intensités) 사이에 번개가 친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지각 될 수 없는 어두운 전조가 이에 선행한다. (···) 두 이질적 계열이 주어진다면, 차이들의 두 계열이 주어진다면, 전조는 이 차이들을 차이짓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식으로 예의 전조는 그 자신의 힘으로 차이들을 직접적인 관계 속에 넣는다. 전조는 차이의 즉자태 혹은 다르게 차이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차이의 제곱이며, 차이나는 것을 차이는 것과 관계지우는 스스로 차이나는 것이다. (차이와 반복2)

 

새롭게 되기 위해 모든 이미 고정된 것을, 이미 익숙해진 것을 지우는 것, 시야에 명료하게 드러난 것을 불명료하게 만드는 것이것이 혼미불이 나에게 주고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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