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미셸 푸꼬의 The Government of the Self and Others :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82-1983 1의 제1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의 1강과 2강은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 및 그 후속 작업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를 상세히 분석해내고 있다.
제1강 (1983년 1월 5일 1교시)
푸꼬는 두 개의 “전적으로 정당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① 정신의 역사(the history of mentalities)―실제 행동 형태들과 그것들에 동반되는 가능한 표현들의 분석
② 재현의 역사(history of representations)―① 이데올로기의 분석 ② 지식의 내용의 진실성의 분석.
그리고 자신은 이와는 다른 방법론을 따른다고 한다. ‘사유의 역사’(a history of thought)이다. 이 방법은 ‘경험의 초점들’(focal points of experience)을 분석하는 데 이 초점들에는 ① 가능한 지식의 형식들 ② 행위의 규범적 틀들 ③ 가능한 주체들의 실존의 잠재적 양태들이 포함된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푸꼬의 접근법은
① ‘지식의 역사’(the history of knowledge)를 ‘진실 말하기의 형태들’(forms of veridiction)의 분석으로 대체하는 것
② ‘지배의 역사’(the history of domination)를 통치성의 절차들(procedures of governmentality)의 역사적 분석으로 대체하는 것.
③ 주체 이론 혹은 주체성의 역사를 ‘자기의 실용학’(the pragmatics of self)과 그것이 취하는 형태들의 역사적 분석으로 대체하는 것
이다.
푸꼬는 이번 학기 강의의 ‘작은 제사’(a little epigraph)와 같은 것으로 칸트의 한 텍스트를 다루겠다고 한다. 이번 강의에서는 자기와 타자의 관계에 기반을 둔 통치를 다루려고 하는데, 칸트의 이 텍스트는 이와 상통한다는 것이다. 이 텍스트란 바로 푸꼬가 이미 여러 번 다룬 적이 있는 「계몽이란 무엇인가?」(“Was ist Aufklärung?”)이다.
이 텍스트가 잡지에 실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는, 이 텍스트가 ‘공공’(public, Publikum) 개념을 가동하며 이 개념은 무엇보다도 작가(savant; Gelehrter; man of culture)와 독자(모든 개인)의 관계라는 점에 있다. 이 관계는 칸트의 계몽 분석에서 본질적 축을 이룬다.
18세기에 이 관계는 대학이나 책을 통해 수립되었다기보다는 잡지발행과 연관되는 지식인 공동체들이나 학회들의 표현형식들을 통해 수립되었다. 그 결과 이 잡지들, 학회들, 지식인 모임들이 공중의 개념에 상응하는 권위를 구성한다. 공공은 물론 대학들이 개혁되는 19세기에 수립되는 대학의 공공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가 미디어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들을 수행할 때 생각하는 종류의 공공(공중)도 아니었다. 바로 이 공공 개념이 그의 분석의 중심부에 놓이는 것이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멘델스존(Mendelssohn)의 응답이 1784년 9월에 같은 잡지―Berlinische Monatsshrift―에 실린 바 있다. (칸트의 글은 1784년 12월에 실렸다.) 9월은 칸트가 자신의 글을 완성하던 시기라서 칸트는 멘델스존의 글을 읽지 못했다. 따라서 동일한 물음에 대하여 두 응답이 동시에 나온 셈이다.
두 텍스트를 같이 놓고 보면 흥미롭다. 철학적 계몽과 유태인이 생각하는 계몽(the Jewish Aufklärung)이 마주쳐서가 아니라, 양자 모두 종교를 포함한 모든 것과 관련하여 양심과 표현의 절대적 자유의 가능성이나 권리만이 아니라 그 필연성을 명확히 상정하기 때문이다. (사적으로는 특정 종교를 믿더라도 공공의 측면에서는 그것에 속박되지 않는다!)
칸트의 텍스트는 또한 철학적 성찰에서 새로운 유형의 물음이 출현한 것이기에 흥미롭다. (푸꼬는 이를 특별히 강조하고 싶어 한다.) 역사를 분석하는 칸트의 텍스트들을 기원, 완성, 합목적성, 목적(론)의 문제들이 가로지르는데, 「계몽이란 무엇인가?」는 이런 문제들을 직접 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서 최초로 출현하는 것은 현재의 문제, 현재적 실재의 문제(the question of the present, of present reality)이다. 오늘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것이 현재를 철학적으로 다룬 첫 사례는 아니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의 서두에서 자신의 당대를 다룬 바 있다. 라이프니츠의 사례도 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작업은 철학적 결정을 위한 근거(grounds)를 찾는 것을 항상 포함한다. ‘현재의 어떤 요소가 이러저러한 철학적 결정을 결정할 수 있는가?(What is it in the present situation that can determine this or that philosophical decision?)라는 식의 물음이다.
이제 멘델스존과 칸트에서는 ‘이 현재란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① 현재 속에 있는 요소로서 현재 철학적 성찰에 의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인가? ② 이 요소가 어떻게 사유·지식·철학과 관련된 과정의 표현인가? ③ 사유자·지식인·철학자 자신이 어떻게 이 과정의 일부이며 더 나아가 제 나름의 역할을 하는가?
현재를 철학적 사건으로 묻는 일의 출현. 사건에 대해서 말하는 철학자가 속하는 사건. 철학을 담론적 실천의 한 형태라고 할 때에는, 철학이 자신의 현재의 담론적 실재의 출현의 표면(the surface of emergence of its own present discursive reality)이 되기. 철학이 현재의 실재를 그 철학적 의미, 가치, 특이성을 자신이 표현해야 하는 사건으로서 묻는 일. 철학이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근거와 자신이 말하는 것의 토대를 발견해야 하는 사건으로서 묻는 일. 이는 철학자가 어떤 교설이나 전통을 고수하는 문제도 아니고 인간 공동체 일반의 구성원이 되는 문제도 아니다. 철학자가 현재의 일부가 되는 문제이며 현재의 특징적인 문화적 총체와 연결된 특별한 ‘우리’의 구성원이 되는 문제이다. 이 ‘우리’는 철학자 자신의 성찰의 대상이 되었거나 되는 과정에 있다. 철학자가 이 ‘우리’의 특이한 구성원이 되는 것에 관해 묻은 일도 필수적이다.
이는 근대의, 근대에 관한 담론으로서의 철학의 변별적 특징이다. 물론 근대에 관한 물음이 이 텍스트와 함께 유럽문화에 도입된 것은 아니다. 근대의 문제는 적어도 16세기에서부터 17세기를 걸쳐서 18세기의 초에 제기되었으며, 주로 고대와 근대를 관계짓는 방식으로 제기되었다. 어떤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고대인들이 근대인들보다 우월한가? 우리는 쇠퇴의 시기에 살고 있는가?
이제 칸트에게서 근대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방식이 출현한다. 이제는 현재에 대해 화살촉과도 같은 관계로 제기된다. 나의 현재의 실재는 무엇인가? 이 현재의 실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이 현재의 실재에 대해서 말할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의 출현점을 나타내는 칸트의 텍스트는 물론 광범하고 중요한 역사적 과정의 일환이다. 계몽이라는 이름 자체가 흥미롭다. 계몽의 시대는 스스로 이름을 지은 첫 시기이며, 쇠퇴니 번영이니 광휘니 하는 것이 아니라 계몽이라는 독특한 사건의 이름을 부여했다. 계몽은 사유, 이성, 지식의 일반적 역사에서 발생한다. 계몽의 시대는 자신의 현재에 대한 관계, 그리고 자신의 역사적 상황을 인식하게 해주는 지식, 무지, 환상, 제도의 몸체들 및 형식들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사상, 이성, 지식의 일반적 역사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말한, 스스로 이름 붙이고 자신의 모토를 스스로 만든 시기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텍스트에서 보는 것이다.
푸꼬가 이 텍스트를 강조하고 싶은 마지막 이유는 계몽에 대한 칸트의 논구가 18세기 혹은 심지어는 계몽의 과정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계몽의 문제에서 우리는 지난 수세기에 걸친 긴 역사를 가진 특정의 철학하기 방식의 최초의 발현 가운데 하나를 본다. 어쨌든 ‘근대 철학’이라 불리는 것의 본질적 기능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현재의 실재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우리는 그 궤적을 18세기 말에서 19세기를 관통하며 추적할 수 있다.
여기서 푸꼬가 강조하고자 하는 한 가지는 칸트가 자신이 1784년에 응답을 한 문제, 자신에게 외부로부터 제기된 문제를 잊지 않고 계속 다시 제기하며 다른 사건과의 연관 속에서 새롭게 응답한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물론 프랑스 혁명이다. 1798년에 칸트는 1784년 텍스트의 속편에 해당하는 것을 썼다. 1784년에 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려 했다. 1798년에 그는 ‘혁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응답한다.
The Contest of the faculties의 둘째 에세이에서 칸트는, ‘인류는 항상 진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목적론적으로 답할 수 없고 징표(sign)의 가치를 가진 사건을 포착해냄으로써 답할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을 나타내는 징표인가? 역사를 관통하는, 진보의 영속적 원인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과거에도 작동했고 지금도 작동하며 미래에도 작동할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진보가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줄 사건은 ‘상기적, 지시적, 예시적’(“rememorativum, demonstrativum, pronosticum,”) 징표이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 이러한 징표의 역할을 하는 것이 ‘혁명’이다. 6절에서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상기적, 지시적, 예시적 가치를 가진―푸꼬] 이 사건의 핵심이, 이전에 위대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을 조그맣게 만들고 조그맣다고 생각되었던 것을 위대하게 만드는 인간의 고결한 행동들과 큰 범죄들에 있다거나, 아니면 마치 마법에 의한 것인 듯 기존의 웅대한 정치구조들이 사라지고 다른 정치구조들아 마치 땅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듯이 그 자리에 세워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결코 이런 것이 아니다.”
푸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한다.
첫째, 칸트는 정치 치제의 대대적 전복, 운명의 역전 등을 거부한다. 예의 징표는 큰 사건들에서가 아니라 거의 지각되지 않는 사건들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해석 혹은 해독이 없이는 우리의 현재를 의미의 차원에서 분석할 수 없다. 2 이러한, 큰 사건이 아닌 사건이 바로 혁명이다.
그런데 혁명이 큰 사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전복의 사건이며 운명의 역전이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칸트는 의미심장한 것은 혁명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의미심장한 것은 혁명이 스펙터클로서 존재하는 방식, 참여자가 아닌 모든 관찰자들, 목격자들이 맞아들이는 방식이다. 혁명의 몸짓들(gesticulations)이 진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성공한 혁명이라도 그것을 다시 하라면 분별력 있는 사람은 그렇게 희생을 치르면서는 다시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혁명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는 진보의 징표도 아니고 진보의 부재의 징표도 아니다. 혁명에서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둘째, 중요한 것, 의미가 있는 것, 진보의 징표를 구성하는 것은, 혁명의 주위에 “열의에 근접하는 소망의 공감”(sympathy of aspiration which borders on enthusiasm)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혁명 자체가 아니라 혁명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일어나는 일, 이들이 혁명과 맺는 관계이다. 즉 혁명에 대한 열의이다. 이 열의가 무엇의 징표인가? ① 모든 사람이 스스로 원하는 바의 적절한 정치 체제를 만들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② 사람들이 원칙상 공격적인 전쟁을 피하는 정치 체제를 만들고자 한다는 점의 징표이다.
이 두 가지는 바로 계몽의 과정이기도 하다. 혁명은 실제로 계몽 과정 자체의 완성이요 계속인 것이다. 칸트는 인간이 이러한 정치 체제를 만들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아직 이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혁명이나 개혁이 실패하더라도,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이 철학적 예언이 가진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칸트는 본다. 이 사건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인류의 이익과 너무나도 연관되어 있어서, 이 사건의 영향력이 세상에 너무 널리 퍼져 있어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면 이 사건이 상기되지 않을 수 없으며 새로운 혁명 시도의 위기에서 회상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푸꼬 생각에 이 텍스트는 단지 칸트의 체계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서의 혁명―그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과거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영속적 잠재성(une virtualité permanente)을 구성하는 그런 사건―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예언적 텍스트로서 제시되었기에 “극히 중요하다.” 이 사건이 미래의 역사에서 진보를 향한 운동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보장한다.
푸꼬가 보기에 계몽의 문제(question)―이성의 문제와 이성을 역사적 문제(problem)로서 사용하는 문제―는 칸트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철학적 사유를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혁명 또한 철학의 또 하나의 거대한 문제이다. 푸꼬가 보기에 기본적으로 칸트는 근대 철학을 양분한 두 거대한 전통을 창립했다.
그의 비판서들―특히 첫 권―에서 칸트는, 진실한 지식의 가능성의 조건을 묻는 비판철학의 전통을 창립했다. 우리는, 근대 철학 전체가 19세기 이래 진실의 분석학으로서 자신을 제시하고 발전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앵글로-색슨 분석철학의 형태로 존재하는 형태의 철학이다.
그런데 근대 및 현대 철학 내부에는 다른 유형의 물음이 있다. 계몽의 문제나, 혁명에 대한 칸트의 텍스트에서 탄생한 유형이다. 이 전통은 진실한 지식의 가능성의 조건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전통은 ‘무엇이 현재적 실재인가?’, ‘무엇이 우리의 경험의 현재적 장인가?’, ‘무엇이 가능한 경험의 현재적 장인가?’를 묻는다. 여기서는 진실의 분석학이 관건이 아니라, 현재의 존재론, 현재적 실재의 존재론, 근대의 존재론, 우리 자신의 존재론(une ontologie de nous-même)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관여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철학적 선택은 이렇다. 진실 일반의 분석 철학으로서 나타나는 비판 철학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적 실재의 존재론, 우리 자신의 존재론을 형성하는 비판적 사유를 택할 것인가. 헤겔에서 니체, 막스 베버를 거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이르기까지, 나[푸꼬] 자신도 연결되는 형태의 성찰을 창립한 것은 이 후자의 형태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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