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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 운동

은하수의 별들 같이 많은 커먼즈들


* 아래는 데이빗 볼리어의 Think Like a Commoner의 9장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9장 은하수의 별들 같이 많은 커먼즈들

 

토착민들은 해커들이 소프트웨어 코드를 공유하고 사회과학자들이 커먼즈에 대한 복잡한 이론들을 발전시키기 오래 전에 커머닝의 기술(the art of commoning)을 세련되게 다듬었다.

중세 영국 및 유렵의 커먼즈의 오랜 역사를 잊지 말자.

세계 전역에 있는 농촌 지역의 생계자급 커먼즈의 오랜 역사를 잊지 말자.

커먼즈로 관리되는 도시 공간들과 공동체 기획들의 오랜 역사를 잊지 말자.

인간 사회들은 여러 시대를 거쳐 영광스러운 일련의 커먼즈를 산출했다.”

 

이 장에서는 몇몇 두드러진 부류의 커먼즈들을 더 깊게 탐구하고자 한다. 요점은 추상으로서가 아니라 현장에 존재하는커먼즈들에 대한 더 풍부한 정신적 지도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방법론과 관련된 주의.

커먼즈에는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분류체계란 없다.

커머닝은 궁극적으로 경험적이며 역사적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experiential and historically situated)

 

과도하게 이론화하는 것보다 커먼즈의 일반적 다발들(general clusters of commons)을 인식하는 것이 낫다. “커먼즈는 일군의 사람들이 어떤 자원을 집단적인 방식으로, 공정한 접근, 이용, 장기적 돌봄을 특별히 염두에 두면서 관리하기로 결정할 때 발생할 수 있다.” 그래도 조야하더라도 정신적 지도를 하나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

 

생계자급 커먼즈(Subsistence Commons)

 

전통적인 커먼즈는 자연자원, , 어장, 경작지, 수렵대상을 중심으로 한다. 이 자원들은 지구의 선물로서, 모두의 생존과 복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결국 요점은 사회적 관습과 관행을 강, , 농지의 자연적 동학과 혼합시키는 사회-생태적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특정의 일반적인 커머닝 패턴이 출현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뉴멕시코, 토착민들(Hispanic Americans)1600년대 이래 아쎄끼아(acequia(s))라고 알려진 공동체 기반 수로를 관리해왔다. “biocultural” 제도는, 아메리카 남서부와 같은 메마른 지역에서도 커먼즈가 어떻게 물의 사용을 생태적 한계에 맞출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주목할 것은, ‘아세끼아가 뉴멕시코의 주 법의 인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물 공급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공동체이다. 아세끼아의 모든 회원들은 수로의 연례 청소와 같은 의무이행에 참여한다. 뉴멕시코의 이웃 타운들은 무한정한 도시주변 개발과 물에 대한 탐욕스런 수요로 완전히 망가진 반면에, 아세끼아는 토양과 물을 보존하고 대수층(帶水層)을 재충전하며 야생생물과 식물 서식지를 보존하면서 사람들의 물에 대한 욕구를 공정하게 충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생계자급 커먼즈는 현대인들에게는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것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요점이다. 시장활동에 강력한 한계를 부과했던, 시장 이전의 사회적 규범으로 가보는 것이다. “커머너들에게는 시장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지고의 목적이 아니다. 공동체 욕구와 생태적 안정성이 우선적이다. 생계자급 커머너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만을 취하고 자원을 보호한다. 자족의 윤리를 발전시키는 것, 이는 현대에는 특이한 성취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생계자급 커먼즈에 거의 관심이 없다. 아마도 작고 시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루하겠지!) 그리고 생계자급 커먼즈의 가치는 숫자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GDP 통계에 표시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경제적 틀은 공동체 자결, 생태적 탄력, 사회적 공정성 혹은 지역과의 문화적 연관성이 가진 중요성을 이해할 길이 없다. “그러나 생계자급 커먼즈는 재산권이나 화폐 없이 시장체제 외부에서 작동하면서 (커먼즈 연구 국제연합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0억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계자급 커먼즈는 매우 다양하고, 그 나름의 문제도 없지 않다. 다수가 더 나은 관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생계자급 커먼즈는 생태적 한계를 존중하려고 하는, 일상적 생계자급과 존엄의 중요한 수단으로 남아있다.

 

토착민 커먼즈(Indigenous People’s Commons)

 

10년 전에 페루인들은 포테이토파크(Potato Park)풍경보존 커먼즈’(landscape conservation commons)로 만들어내서, 안데스의 토착부족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토착 감자종과 변종들에 대한 온전한 돌볼 권리(stewardship rights)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이는 초국적 농-바이오테크 회사들(ag-biotech firms)이 안데스 부족들이 수천 년에 걸쳐서 개발해온 900개의 유전적으로 가치있는 감자 변종들에 대하여 특허를 얻고 싶어 하기 때문에 주요한 성과였다.

 

공식적으로는 토착 바이오문화유산 지역(Indigenous Biocultural Heritage Area)라고 알려진 포테이토 파크는 여섯 개의 토착 공동체(Amaru, Chawaytire, Cuyo, Grande, Pampallaqta, Paru-Paru, Sacaca)에 속한 7천 명의 마을사람들에게 합동으로 공동 토지를 집단적 이익을 위해 관리하도록 승인하고 있다. 요점은 이 사람들이 농-생태적 풍경을 보존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계와 삶의 방식들을 발전으로부터 (특히 국제적 특허와 무역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례적이게도 포테이토 파크의 경우 공동체 가치들과 관행의 지역 생태계와의 결합은 형식적이고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다른 한편, 그러한 커먼즈 기반 돌봄(stewardship)은 토착민 커먼즈의 특징이다.

 

토착민 커먼즈도 물론 다양하다. 호주 원주민들은 그들의 신성한 장소들, 문화적 지식, 놀라운 예술적 디자인들을 외부인들이 (특히 상업적 이익세력들이) 전유하는 것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오랫동안 싸웠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에는 지역의 식물과 민간의료에 대한 극히 전문화된 유형의 지식을 보호하고 사용하는 많은 전통적 지식 커먼즈들’(‘TK 커먼즈들’)이 있다. 일부 초국적 회사들은 이 지식을 전유하여 유전자 조작된 농작물들과 약품들에 대하여 특허를 내려고 시도한다. 종종 생물약탈’(biopiracy)이라고 알려진 유형의 종획이다. 인도에는 초국적 기업들이 님나무(neem) 씨앗들과 심황을 특허 내려고 한 몇몇 유명한 사례들이 있었다. 마다가스카르의 풍요로운 생물다양성 또한 특허 낼 수 있는 유전자 지식을 찾는 회사들의 주요 표적이었다. 이러한 상업화는 TK 커먼즈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이 사적으로 취해져 팔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커먼즈에 기여하기를 꺼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선물이 다른 사람의 자본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마르셀 모스)

 

기업에 의한 TK 커먼즈의 종획은 몇몇 혁신적 대응들을 촉발시켰다.

인도의 커머너들은 지식을 사유화할 특허의 적용에 도전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공적 도메인 의료지식의 데이터베이스인 <전통지식 디지털 도서관>(Traditional Knowledge Digital Library)을 구축했다.

<자연의 정의>(Natural Justice)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의 법률가 집단은 바이오문화 공동체 프로토콜’(BCP)이라고 알려진 법적 도구를 개발해냈다. 이는 외부인들로부터 문화적 전통과 관행을 보호하려는 새로운 시도이다. BCP는 한 공동체가 그 자연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선택한 특수한 가치들과 관습적 절차들이다. 이 프로토콜들은 또한 커머너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그리고 그들에게 부과될 수 있는 특수한 공적 정책들에 자유롭고 우선적이며 정보에 기반을 둔 동의를 할 절차적·실체적 권리들을 나타낸다. BCP들은 또한 기획들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토착민 커먼즈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상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어렵다. 아주 많은 상이한 유형의 풍경들, 부족 우주론들 및 문화적 관행들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학자 Rebecca Tsosie는 토착민들의 앎 및 자연과의 상호작용의 체계들 사이에 놀라운 유사성들이 있음에 주목했다. 토착민 커먼즈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구를 살아있는 존재로 보는 인식, 인간들이 다른 살아있는 것들과 친족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믿음, 땅이 사람들의 정체성에 본질적이라는 인식, 미래 세대를 포함하는 인간들 사이의, 그리고 인간들과 자연 세계 사이의 관계로 확대되는 상호성과 균형의 개념.”

 

토착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된 사회생태적 모델들을 발전시켜왔는데, 이는 불규칙적인 시장거래가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었다. 서양인들은 종종 토착민들의 커먼즈를 그것이 엄밀한 개인주의, 사유재산권, 시장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한다. 미국 원주민법을 연구하는 학자인 N. Bruce Duthu는 이렇게 썼다. “서양 전통에서 재산이라는 생각은···장기적인 생태적 귀결 혹은 자연이 사람들에게 가지는 사회적 의미들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자원의 시작 효용을 지향하는 것을 함축한다. 가격체계는 동일한 가격이 매겨진 자연의 요소들 사이의 기본적인 등가관계를 전제한다. 따라서 자연과 더 직접적이고 생계와 연관되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는 재산과 시장에 기반을 둔 감성을 생소하고 심지어는 공격적인 것으로 본다.”

 

세계의 산업화된 국가들이, 유엔이 자연의 권리이는 아주 많은 토착민 커먼즈의 심장부에 놓여있는 생각이다를 인정해야 한다는 볼리비아의 제안을 조롱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산업화된 세계는 라틴아메리카의 파차마마(Pachamama) 운동이 옹호하는 것처럼 어머니 대지’(Mother Earth)를 존중하는 것을 우스꽝스럽고 비실용적인 난센스로 본다. 그러나 이런 편견은 서양의 걱정스러운 문화적 근시안을 예증할 뿐이다. 서양은 커먼즈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회적·시민적 커먼즈 (Social and Civic Commons)

 

인간의 협동하려는 자연적 성향은 혁신의 강력한 원천으로서, 혁신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시민적 커먼즈들이 발생했다. 그 큰 사례가 국제적 시간 은행제운동이다. 시간 은행제(미국에서는 때로 시간 달러라고 알려져 있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간 점수’(time credit)을 벌게 하는 제도이다. 서비스의 사례들에는 잔디 깎기, 아이 돌보기, 가사 돕기,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기가 포함된다. 사람들은 나중에 시간 점수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를 받는 데 쓸 수 있다. 종종 교회나 비영리단체들에 의해 운영되는 시간 은행제는 돈보다는 시간이 많은 다수의 노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들은 시간을, 시장에서는 충족될 수 없는 그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게 해줄 통화‘(通貨)(시간 점수)로 바꿀 수 있다. 흥미롭게도, 많은 참여자들이 시간 은행제를 대체 시장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제도로 간주한다.

 

혈액 및 장기 기증 제도가 사회적 커먼즈의 또 하나의 사례이다. 장기와 혈장(血漿)이 때로는 상품들로서 취급되지만, 자원제도가 존속하는 것은 우리가 신체의 부분들의 기증을 사회적 선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혈액은행은 종종 선물경제에 비견된다. 몇몇 유명한 연구들은, 혈액과 장기의 선물 경제가 시장을 병들게 하는 윤리적 갈등을 더 잘 피할 수 있으며 더 높은 질의 혈액과 기관들을 조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혈액이나 장기를 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자들. 약물 중독자들,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인 것이다.

 

전문적 학문분야도 매우 생산적인 사회적 커먼즈이다. 공유, 공개 토론 동료평가(peer review)에 기반을 둔 공동체 윤리.

 

시장은 거래, 금전관계(“cash nexus”)에 초점을 두지 오래 가는 관계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비인격적 관계. 가치의 엄밀한 등가교환(strict ‘even-steven‘ exchange of value). 개인들과 그들의 이익들을 분리하는 경계가 매우 뚜렷하다.

 

그러나 Lewis Hyde가 그의 책 The Gift에서 주목한 바처럼, 선물경제에서는 사회적 경계들이 흐려지거나 심지어는 선물(膳物)교환을 통해 제거된다. 준 가치와 받은 가치가 엄밀하게 동일한지에 대한 이기적 계산은 없다. 요점은 계속적인 사회적 관계와 공감을 수립하는 것이다. Hyde의 책의 부제인 Imagination and the Erotic Life of Property는 이 생각을 멋지게 포착하고 있다. 사람들이 선물로 인해 더 가까워지며 특히 교환이 간접적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질 때 그렇다는 것이다. 빚진 것에 대한 명확한 계산이 없이 선물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적으로 유통되는 한 사회적 커먼즈는 번영한다.

 

사회적 커먼즈가 특히 인터넷에서 번영하는 것은, 시장이 요구하는 거래비용광고비용, 법적 계략, 종업원 임금 등을 확 낮추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협동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가 시장경제의 새로운 혼종 부문으로서 성장하고 있다. 솜씨 좋게 설계된 웹 시스템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차량·자전거들·도구들의 (현금 기반의) ‘공유를 연계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 기반의 선물경제로서 더 주목할 것 가운데 하나는 CouchSurfing(잠자리 서핑)이다. 전 세계 97천 도시들과 타운들에서 여행자들이 사용하는 무상의 비공식적인 하룻밤 묵기 시스템이다. 집주인과 방문자 사이의 현금 교환은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CouchSurfing은 웹에 의해 매개되는 방대한 선물경제로서 연간 5백만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집에서의 환대를 주고받는 것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종종 새로운 우정이 싹트기도 한다.

 

사회적 커먼즈는 삶 자체만큼이나 자연발생적이고 다양하다. 여기에는 공동체 정원들과 타운 축제들, 시민들의 연합들, 아마추어 스포츠 시합들, 생태마을들, 공동주거 및 공동체에 의해 뒷받침되는 농업이 속한다.

 

도시들은 사회적 커먼즈가 나오기에 특히 비옥한 환경이다. 사람들이 매우 다양하고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가 리더격이다. 지역 조직인 공유가능(Shareable)이라는 잡지가 정책보고서 공유 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책을 낸 이후에 시장 Ed LeeSharing Economy Working Group을 임명하여 공유 가능한 도시를 장려하는 방식들을 탐구하도록 했다. 아이디어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시민들 사이의 자원 공유 (출퇴근 같이 하기), 시 정부가 돕는 공동생산 (도시 농업), 시민들 사이의 상호부조 (노령자 돌보기).

이탈리아의 나폴리 시장 Luigi de Magistris는 커먼즈 평가사(an Assessor of the Commons)를 임명하여 지역 커먼즈 체계를 검토하도록 했으며 이탈리아 전역의 자치단체 공무원들을 모아서 지역 커먼즈에 대한 시 정부의 지원을 재선하도록 하였다.

 

로마에서, 거대한 공립극장이자 전에 오페라 하우스였던 Teatro Valle(테아트로 발레)의 전() 직원들이 2011년 시 정부가 이곳을 지원하는 데 실패한 이후에 이곳을 접수하여 자기조직된 커먼즈로서 관리했다. 이는 시 정부가 소중한 공공 재산들을 사유화하여 임대료가 비싸지거나 퇴출되는 일들이 발생하자 시민들의 여흥 공간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던 일의 일환으로 일어났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Teatro Valle 점거는 다른 시민단체들을 고취하여 다른 건물들과 공간들을 요구하는 직접 행동 항의를 행하도록 했다. 불만에 찬 로마인들은 단순히 사유화에 맞서 싸우는 대신 자신들이 대의제에 의거한 정부를 넘어서 능동적이고 계속적인 자치(self-governance)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도시 지역에서 사회적 커먼즈를 촉진하는 다른 더 야심에 찬 기획들이 존재한다. 도시계획가들인 Nikos A. Salingaros, Federico Mena-Quintero 등은 자율생산(peer-to-peer production)의 원칙들을 도시 환경에 적용하고자 한다. ‘P2P 도시주의’(P2P Urbanism)이라고 불리는 이 계획은 도시설계와 일상생활이 일반인들에게 더 쾌적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스타 건축가들’(starchitects)이 많은 도시들에 가한 비인간화하는 기념비주의(dehumanizing monumentalism) 대신에, P2P 도시주의는 패턴이론의 대가이자 건축가인 Christopher Alexander의 지혜에 의거하여 협동적 설계와 도시계획에의 일반인의 참여를 제안한다. 이 계획은 또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자율생산의 스타일로 도시설계를 지역의 조건과 개인들의 욕구에 더 맞추도록 노력한다.

 

커먼즈에 끼워 넣어진 사업(Business Embedded in Commons)

 

화폐 경제의 윤리는 커머닝의 이념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커머너들도 있고 커먼즈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시장과의 실용적 관계에 더 열려있는 커머너들도 있다. 그러면 시장활동과 커먼즈는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가? 이는 커머너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내 생각으로는 사회의 다른 부분과 완전히 고립되어 움직일 수 있는 커먼즈는 거의 없다. 실제로 모든 커먼즈들은 국가나 시장에 일정하게 의존하는 혼종(混種)들이다. 따라서 중요한 요점은 커먼즈가 가능한 한 많은 자율성과 목적의 통합성을 가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커먼즈가 시장들과 상호작용 하더라도 종획, 소비주의, 자본축적에의 욕심 등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커먼즈와 시장 사이의 지속적인 조화로운 관계를 찾는 것은 복잡한 과제이다. 시장들이 반드시 자본주의오 같지는 않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시장들은 만일 공동체들 내에 함입되고 공동체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되면 전적으로 지역적이고 공정하고 공동체의 욕구에 반응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업은 자본의 신성한 권리’(Marjorie Kelly)에 의해서 추동되는 전국적 혹은 전지구적 시장들과 통합되어 있다. 자본에 의해 추동되는 시장들은 소비자들, 노동자들, 공동체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엄청난 구조적 불평등을 산출하는 경향이 있다. 시장들은 장기적인 결과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자연을 약탈한다.

 

좋은 소식은, 많은 공동체들이 시장들의 구조와 행위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주장하는 것이 더 쉽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동체의 지원을 받는 농업(CSA, 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과 지역농민 시;장들은 공동체들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사회적 관계들과 지역에 대한 책임성은 공동체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게걸스런 윤리를 피하면서도 많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이 반드시 약탈적이고 사회적으로 부식적일 필요는 없다. 공동체에 통합될 수 있다.

다른 사례들로는 협동조합들, Slow Food 운동, 상호사업(mutual business, 소비자들이 회원이 되어 소유)가 있다. 이들은 모두 더 큰 사회적 가치들이 시장 활동에 통합되도록 한다.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커먼즈 기반 사업은 베네수엘라의 쎄꼬쎄쏠라Cecosesola(Central Cooperative for Social Services of Lara)이다. 이 자기조직화되었고 자립적 재정을 가진 기획은 40년 넘게 시민 연합들 및 조직들뿐만 아니라 80개 이상의 협동조합들은행들, 농장들, 공장들을 운영해왔다. 쎄꼬쎄쏠라는 위계적 관계와 상사(上司)를 의식적으로 회피한다. 숙의는 합의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회의들(assembles)에서 이루어진다. 쎄꼬쎄쏠라의 다섯 개의 지역 식품 시장의 가격은 수요에 기반을 두지 않고 공정에 기반을 둔다. 예를 들어 모든 채소들은 킬로 당 동일한 가격으로 팔린다. 신뢰, 공동 이익에의 헌신,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장려하는 것이 쎄꼬쎄쏠라의 놀라운 성공의 중심에 놓여있다.

 

커먼즈와 시장을 혼합하는 요령은 커먼즈 둘레에 방어할 수 있는 경계를 고안하여 기본적 자율성이 유지되도록 하면서 뚜렷한 커머닝 문화를 양성하는 데 있다. 중세에는 커머너들이 공동체의 연례 축제의 일환으로 종종 경계 순찰하기’(beat the bounds)를 했다. 커먼즈의 둘레를 공동체가 단속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현대판 경계순찰을 고안하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두 성공적인 사례는 GPLCC라이선스이다. 양자는 코드와 디지털 내용의 사적 전유를 금지함으로서 커머너들이 그들의 공유된 노동의 과실들에 대한 통제력을 보유할 수 있게 보장한다. 남아프리카의 Natural Justice가 발전시킨 바이오문화적 프로토콜들도 유사한 목적을 가진다.

 

오늘날 커머너들은 커먼즈의 보존을 위한 방법으로서 형식적 규칙들과 윤리적 규범들을 고안할 때 경계를 순찰한다. 위키피디아 편집작업의 공들여 다듬어낸 거버넌스 규칙들, 메인(Maine)의 가재잡이 어부들이 자기들 사이에서 협상해낸 관습들, 뉴멕시코의 아쎄끼아를 관리하는 규칙들이 모든 것은 커먼즈를 가꾸는 데 에너지를 투여하지 않은, 혹은 파괴자들(vandals)이나 불로소득자들(free riders)로 행동할 수 있는 외부인들을 배제하면서 자원과 공동체를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스로 고안한 규칙들과 거버넌스 체계를 갖춘 커머너들은 시장을 압박하여 소비자들에게 더욱 책임있는 태도를 취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시장을 커먼즈 기반 시장’(commons-based markets)라고 부를 수 있다. 공동체들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을 길들이는 힘을 갖추는 것이다. 이런 시장들은 공동체들 혹은 느슨한 네트워크들이 스스로를 열정적인 친연집단(affinity groups)으로 조직하여 시장으로 하여금 특정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할 수 있는 인터넷에서 더욱 더욱 널리 퍼지고 있다.

 

MIT 교수인 Eric von Hippel은 그의 책 혁신을 민주화하기(Democratizing Innovation)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 파도 타는 사람들, 암반 등반가들 등 극한 스포츠열광자들의 공동체들을 여럿 서술한다. 이들은 선구적인 아이디어들의 원천으로서 기업들이 이 아이디어들을 받아서 개발하여 상업화한다. 물론 많은 커머너들은 커머너들 스스로 자신드링 필요로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더 값싸고 더 책임 있게 생산할 수 있는데 왜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체가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는 정당한 반문이다. 그러나 필요하고 종종 복잡한 사업기능들을 커먼즈의 맥락에서 실행할 수 있는 커머너들의 실질적 능력이 당분간은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이러한 상황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커먼즈를 어떻게 자본주의적 착취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커먼즈의 논리가 자본주의적 시장의 논리로부터 분리되면서도, 필요하면 시장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커먼즈를 구조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이에 관한 큰 논쟁이 존재한다. 나의 동료 Silke Helfrich의 견해로는 그 열쇠가 커먼즈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재생산할 능력을 가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외부로부터의 전유 혹은 개입을 막을 법적 규칙들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커먼즈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사회적 관행들과 규범들을 통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시장들로부터의 지리적 격리나 기술적 장벽들(자원에 울타리치기, 승인된 커머너들을 위한 디지털 게이트들’)을 통해서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호조치들이 없다면 커먼즈는 자본주의적 전유에 취약하다. 이는 Google Books Library Project, 페이스북 및 기타 오픈 플랫폼들에서 볼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커머닝이 또 다른 유형의 시장 투입’(market input)이 되어 커머너들로부터 소외되어 사유화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을 산물을 보호하고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단을 발전시키는 것이 커먼즈에 중요한 것이다.

 

Helfrich에 따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커먼즈 기반 자율생산에서 커먼즈를 창조하는 자율생산으로의 이동”(a shift from commons-based peer production to commons-creating peer production)이다. Helfrich는 이렇게 주장한다 : “커먼즈의 핵심은 조직형식이나 재산권이 아니다. 목적이 핵심이다. 커머닝이 만일 시장에서의 판매로 끝난다면, 커먼즈 기반 생산 과정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체계들의 개방성 자체는 커먼즈의 지속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국가수탁 커먼즈와 전지구적 커먼즈(State Trustee Commons and Global Commons)

 

공유재(CPRs : common-pool resources)는 커머너를 빼고 자원만을 가리킨다.

커먼즈 = 자원 + 공동체 + 관리 규칙들 및 규범들

 

국가수탁 커먼즈가 큰 공유재를 관리하는 한 방법이다. 이는 자원의 국가관리를 달리 말한 것이 아니다. 커머닝을 촉진하는 데서 국가가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는 커머너들을 위한 수탁자(trustee) 역할을 해야 한다. 공유된 자산을 양심적으로 관리하고 종획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나정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국가수탁 커먼즈라고 부르는 것은 자원이 국가가 아니라 민중에게 속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국가수탁 커먼즈는 많은 형태를 띨 수 있다. 정부가 관리하는 자산의 대여를 감독할 수도 있다. 독립적인 커먼즈 트러스트를 승인하여 파견된 담당자와 함께 일하도록 할 수도 있다. 소셜네트워킹 같은 온라인 도구를 활용하여 정부 절차에의 유용한 시민 참여를 끌어낼 수도 있다.

 

사례들

미국에서 연방정부는 공공 토지에서의 방목권을 목장 운영자들에게 최저가로 대여한다. 공공 토지에서 금광, 은광 및 기타 광물을 캘 권리를 에이커 당 5달러에 고정적 사용료 없이 판다. 정부는 또한 전자기 스펙트럼의 부분들을 원격통신에 사용하도록 경매로 판다. 국가수탁 커먼즈의 관건은 어떻게 국가가 토지의 양심적 지킴이(steward)로서 재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대여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가이다. 이런 생각은 공적 이익을 위하여 공적 자원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들의 법적 구조, 작동, 책임 메커니즘에 구워 넣어져야(‘baked into’) 한다.

 

절묘한 모델 하나는 ‘stakeholder trust’(출자자 트러스트)이다. 고전적 사례는 Alsak Permanent Fund이다. 이는 주 입법에 의해 주 소유 토지에서 추출되는 석유에 대해 사용료의 일부를 모으도록 만들어진 독립적인 트러스트 펀드이다. 이 트러스트는 매해 보통 1천 달러 정도에 해당하는 배당금을 주의 모든 가구에 분배한다. 이 펀드는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며 특수한 수익자들(알래스카 시민들)을 위해 수탁자로서 행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석유수입의 일정 몫이 납세자들에게 직접 혜택(비임금 소득의 원천)을 주도록 보장하는 것을 돕는다.

Karl WiderquistMichael W. Howard의 최근의 책 Exporting the Alaska Model에 서술된 대로 이 모델은 미국과 세계 전역의 다른 많은 유형의 자연자원을 관리하는 데 맞추어질 수 있다. 버몬트의 커먼즈 활동가들은 국가의 야생생물과 어류, , 지하수, 광물 등의 자연자원을 맡아 지키는 지킴이로서 행동할 공통자산 트러스트 기금을 제안한다. 소셜 네트워킹에 일어난 혁신 덕분에, 이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민들에게 더 큰 역할을 제공하는 국가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민들은 미리 정해진 정부 과제들에 참여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다. 시민들은 그들 자신이 고안한 새로운 생각들을 개시할 수 있으며 진정한 책임을 질 수 있다.

 

앞에서 나는 시민들을 환경 데이터를 모으거나 NASA가 화성의 분화구들을 분류하는 것을 돕도록 권유하는 생태-디지털 커먼즈’(eco-digital commons)를 언급한 바 있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 특허청(U.S. Patent and Trademark Office)Peer to Patent 프로젝트이다. 이는 발명에 필요한 선행 기술’(prior art)의 사례들을 제출하도록 사람들에게 권유한다. 이는 특허으 질을 개선시키는 한 방법이다. 위키 스타일의 크라우드소싱은 정부가 미래의 혁신을 금지하는, 정당하지 않은 특허 독점들을 나누어주는 것을 막는다. 적절한 지원을 받는다면, 일정 분야에서 전문지식과 관심을 가진 시민-커머너들은 정부 기관들의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선거민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고유한 혁신들을 낼 수 있으며 정부 기관들을 압박하여 임무를 더 잘 수행하도록 할 수 있다.

 

국가수탁 커먼즈의 새로운 프런티어는 지역적(regional)이거나 전지구적인 규모의 공유재의 거버넌스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형태들과 법적 원칙들을 고안하는 것이다. 기존의 국민국가와 국제협약 기구들은 시행될 수 있는 한계를 전지구적 탄소방출에 부과하지 않을 것이며 어장·산호초의 파괴, 생물다양성의 상실을 막지도 않을 것이다. 이 문제들은 모두 정치적 관할지역들을 가로지르고 있는 문제들이다.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들이 곪아왔다. 시장/국가는 이 문제들을 악화시키는 상업활동에 의미있는 한계를 부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Burns Weston과 나[Bollier]는 우리의 책 Green Governance: Ecological Survival, Human Rights and the Law of the Commons에서 커먼즈의 작동을 모든 수준국지적, 지역적, 일국적, 초국적, 전지구적 수준에서 장려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정책구조를 상상하려고 했다.

 

이는 우리는 국가수탁 커먼즈를 넘어 커먼즈에 대한 새로운 양태의 국가지원으로 데리고 간다. 목표는 커먼즈의 거대한 스스로 강해지는 에너지들을 하향식 미시관리 혹은 정치적 개입을 통해 질식시키지 않고 귀중한 거버넌스의 형태로서 풀어내는 것이다. 설계상의 과제는 공유재를 가능한 가장 낮은 수준들에서 다수의 권위중심들을 가지고 다스리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커먼즈의 층위들은 다양화되어 더 상위 수준의 거버넌스 내에 끼워 넣어지게”(nested within) 될 것이다. 오스트롬이 탐구했던 다중심성개념이다.

 

회의론자들은 이런 생각이 사변적이고 허황되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능력이 한정되어 있고 사회적 신뢰가 감소하는 국가제도들이 사람들을 강제하여, 시장/국가 자체가 애초에 시행하기를 바라지도 않을 변화들을 채택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확실히 더 유토피아적이다. 이에 반해 커먼즈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활성화하여 직접적 책임을 지게 하는 능력, 시장 활동에 한계를 가하는 능력, 인간의 발전의 새로운 비전을 모델화하는 능력, 족함의 윤리를 양성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지구적 커먼즈가 구조화됨에 따라 국가에 의해 매개되는 새로운 체계가 커먼즈 기반의 거버넌스가 번성하게 하는 새로운 공간을 열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긴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서는 이 이상 논의할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Burns Weston과 내가 제안하는 비전이다.

 

그러한 전지구적 커먼즈는 커먼즈에 대한 고전적인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논리적 확대라고 본다. 전지구적 커먼즈는 분명 그 정신에서 고전적 커먼즈와 연관되어 있지만, 우리의 공유된 생태적 선물들을 보존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적 상상계를 펼친다. 그 첫째 단계는 국가가 커먼즈를 고유한 준독립적 부문(a qusi-independent sector in its own right)으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커먼즈는 국가 관료제들이 결코 가지지 못할 식량공급능력과 사회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분명 시장/국가라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대담하게 다시 개념화할 것을 요구한다. 나의 동료인 Michel Bauwens는 국가와 시장이 커먼즈와 함께 거버넌스 권을 공유하는 삼두체제’(triarchy)를 제안했다. Market/State/Commons 목표는 식량공급과 권위(authority)를 새로운 사회적으로 더 이로운 배열형태로 재정렬하는 것이다. 국가는 그 초점을 이동하여 파트너 국가가 되어야 한다(Michel Bauwens의 말). 그리고 시장 부문의 공모작 파트너 이상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국가는 깔끔한 부분으로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 자원(대기, 대양 어장, 인간 게놈)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여전히 할 것이다. 또한 많은 양의 돈을 벌 자원들(석유추출, 광물)도 관리할 것이다. 그러나 공공 토지, 국립공원, 황야지대, 국가가 후원하는 연구와 시민적 기반시설을 양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관리할 더 나은 길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정부기관들은 공통적 자산의 양심적이고 투명한 행정 및 신용 피신탁자로서 행동하도록 구조화되어야 한다.

 

순수주의자들은 공유된 자원에 대해 정부가 관리하는 시스템들은 진실한 커먼즈로서 간주될 수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나 학술연구와 같은 커먼즈들도 정부와 시장들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의존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시장이나 정부가 커먼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로, 어떤 조건에서 하느냐이다. 주요한 과제는 커먼즈의 최대의 온전한 견실함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커머닝의 과실들이 영리하고 탐욕적인 기업들과 정부들에게 빨려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커머너들에게 진진한 현재의 과제는 스스로를 자기조직하여 준주권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다. 국가가 자신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를 주장해야 한다.

우리는 커먼즈에 실질적 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 법적 혁신을 고안해내야 한다.

 

커먼즈들의 차이 가운데에서의 깊은 유사성들.’

놀라게 하는 능력 이것이 커먼즈의 지속적인 변별적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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