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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푸꼬, 계몽이란 무엇인가


 

from Michel Foucault, "What is Enlightenment?,"[각주:1] Ethics: Subjectivity and Truth (New York : The New Press 1997)


* 여기서 ‘나’는 푸꼬입니다. 그러나 이 게시글은 번역이 아니라 상세한 내용정리입니다―정남영


I


오늘날 잡지가 독자들에게 설문을 할 때에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견해를 가지고 있는 주제에 관한 견해들을 모으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가능성은 별로 없다. 18세기에는 편집자들이 아직 해결책이 없는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대중에게 묻기를 더 좋아했다. 이것이 더 효과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더 재미있다(entertaining)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어쨌든 이런 관례에 따라서 1784년 11월 독일의 잡지 Berlinische Monatschrift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출판했으며, 답변자는 칸트였다.


중요하지 않은 텍스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이 텍스트는 현대 철학이 대답할 수 없었으며 결코 제거하지도 못했던 한 문제에 대한 사상의 역사에의 신중한 진입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2세기 동안 여러 형태로 반복되었다. 헤겔에서 니체 혹은 막스 베버를 거쳐 호르크하이머나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대면하지 않았던 철학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이 ‘계몽’이라 불리며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현재의 우리를,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우리가 행하는 바를 결정하는 사건은 무엇인가? Berlinische Monatschrift가 여전히 존재하며 독자들에게 ‘현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아마도 우리는 현대 철학은 2세기 전에 매우 경솔하게 제기된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 시도하는 철학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의 텍스트는 다음 몇 가지 이유로 주목에 값한다.

1) 같은 물음에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이 두 달 전에 이미 답한 바 있다. 그러나 칸트는 자신의 답을 할 때 멘델스존의 텍스트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독일 철학 운동과 유태 문화의 새로운 발전의 조우가 이때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멘델스존은 레씽(Lessing)과 함께 30년 정도 동안 그 교차점에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문제는 독일 사상 내에 유태 문화가 들어설 자리를 만들거나―레씽이 Die Juden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다―유태 사상과 독일 철학에 공통적인 문제들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이것이 멘델스존이 Phädon; oder, über die Unsterblichkeit der Seele에서 했던 것이다. 두 텍스트가 Berlinische Monatschrift에 발표되면서 독일의 계몽과 유태인의 Haskala[각주:2]는 동일한 역사에 속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양자는 자신을 배출한 공통의 과정들을 밝혀내려고 하였다. 이는 아마도 공통의 운명을 받아들임을 고지하는 한 방식일 것이다. 이것이 어떤 드라마를 낳는지를 우리는 안다.


2) 이것만이 아니다. 기독교 전통 자체 내에서 칸트의 텍스트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철학적 사유가 자신의 현재에 대하여 성찰하려고 했던 것은 칸트의 경우가 처음은 분명 아니다. 도식화하자면, 이 성찰은 그 당시까지 세 주된 형태를 띠었다.


① 현재는 어떤 내재적인 특징들을 통해 다른 시기와는 구분되는, 혹은 어떤 극적인 사건에 의해 다른 시기와는 분리되는 어떤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제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The Stateman[각주:3]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시기에 속함을 인식한다.[각주:4]

② 현재는 앞으로 다가올 사건의 징조들을 해독하기 위한 시도로 심문될 수 있다. 일종의 역사적 해석학의 원리가 작용한다.

③ 현재는 새 세계의 여명을 향한 이행의 점으로서 분석될 수 있다. 비코(Vico)가 그의 La Scienza nuova의 마지막 장(章)에서 서술하고 있는 바이다.


칸트가 계몽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칸트는 계몽을 전적으로 부정적인 방식으로, 즉 ‘벗어남’(Ausgang, exit)으로서 정의한다. 역사에 관한 다른 텍스트들에서 칸트는 가끔 기원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역사적 과정의 내적 목적론을 정의한다. 계몽에 관한 텍스트에서 그는 현재적 실재만을 다룬다. 그는 현재를 총체성이나 미래의 성취를 기반으로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차이를 찾는다. 오늘은 어제와의 관계에서 어떤 차이를 도입하는가?

3) 나는 짧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다지 명확하지는 않은 이 텍스트[「‘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를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겠다. 단지, 칸트가  어떻게 현재의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특징들을 지적하겠다.


칸트가 말하는 ‘벗어남’은 ‘미숙함’의 상태로부터의 벗어남이다. ‘미숙함’으로 그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의지의 어떤 상태―이성의 사용이 요구되는 영역들에서 우리를 이끌 다른 사람의 권위를 받아들이게 되는 상태―이다. 칸트는 세 가지 사례를 든다. ① 책이 우리의 이해를 대신하는 것 ② 정신적인 지도자가 우리의 양심을 대신하는 것 ③ 의사가 우리의 섭생을 결정하는 것. 어떻든 계몽은 의지, 권위, 이성의 사용을 연결하는 기존의 관계를 변경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또한 주목할 것은 이 벗어남을 칸트가 다소 두 가지 의미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현상으로서, 진행되는 과정으로 특징짓는다. 그러나 또한 그는 그것을 과제이자 의무로서 제시한다. 자신의 미숙함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그는 첫 단락부터 말한다. 따라서 자신이 바뀌어야만 미숙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 의미심장하게도 칸트는 계몽에 모토(Wahlspruch)가 있다고 말한다. ‘과감하게 알라’(Aude sapere)이다. 따라서 계몽은 인간이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인 동시에 개인적으로 성취해야 할 용기있는 행동으로서 간주된다.


‘Menschheit’(인류, 인간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서 칸트의 텍스트에서의 셋째 어려움이 나타난다. 칸트의 역사관에서 이 단어의 중요성은 잘 알려져 있다. 인류 전체가 계몽의 과정에 들어있다고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경우라면 우리는 계몽이 모든 사람들의 정치적․사회적 실존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변화로서 상상해야 한다. 아니면 계몽이 인간들의 인간성을 구성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포함한다고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변화가 무엇인지를 아는 문제가 생긴다. 여기서도 칸트의 답변에 어떤 애매함이 없지 않다. 단순한 외관의 아래에 다소 복잡함이 존재한다.


칸트는 인간이 미숙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두 본질적인 조건들을 정의한다. 이 조건들은 정신적인 동시에 제도적이며, 윤리적인 동시에 정치적이다.


첫째 조건은 복종의 영역과 이성의 사용의 영역의 명확한 구분이다. 미숙한 상태를 특징지으면서 칸트가 거론하는 표현인 ‘따지지 말고 복종하라’는, 군사적 규율, 정치적 권력, 종교적 권위가 일반적으로 행사되는 형식이다. 인류는 복종하도록 요구받지 않고 ‘복종하라, 그러면 하고 싶은 만큼 이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 성숙함에 도달할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독일어는 ‘räsonnieren’이다. 『~비판』들에서도 사용된 이 단어는 이성의 모든 사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자체 말고는 목적이 없는 그러한 이성의 사용을 말한다. 즉 이성의 이성을 위한 사용이다. 칸트는 외관상으로 완전히 사소하게 보이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세금을 내면서도 세금제도에 대해서 마음대로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는 것, 목사로서 책임을 다하면서 종교적 도그마들에 관해서 자유롭게 따질 수 있는 것.


이는 16세기부터 말해진 양심의 자유―복종하는 한 마음 대로 생각을 할 권리―와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칸트는 또 하나의 구분을 다소 놀라운 방식으로 작동시킨다. 이성의 공적(公的) 사용과 사적(私的) 사용의 구분이다. 그런데 그는 즉시 덧붙여, 이성은 그 공적 사용에서 자유롭게 마련이고 사적 사용에서 복종적이게 마련이라고 한다. 이는 보통 양심의 자유라고 불리는 것의 정반대이다.


우리는 좀 더 정밀해야 한다. 칸트에게서 무엇인 이성의 사적 사용을 구성하는가? 그것은 어떤 영역에서 발휘되는가? 인간은  "기계의 톱니바퀴의 이들 중 하나"(a cog in a machine)일 때 이성을 사적으로 사용한다고 칸트는 말한다. 즉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때, 직업이 있을 때. 여기서 이성은 사회로서는 부분적인 특정의 목적들에 종속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성의 자유로운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발휘할 때,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 이성적인 존재로서 이성을 발휘할 때, 이성적인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이성을 발휘할 때, 그때 이성의 사용은 자유롭고 공적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계몽이란 단순히 개인들이 자신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받는 과정이 아니다. 이성의 보편적이고 자유롭고 공적인 사용이 서로에게 부과될 때 계몽이 존재한다.


이제 이는 칸트의 텍스트에 던져져야 할 넷째 물음으로 이끈다. 계몽은 단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 과정으로서만, 그리고 개인들에게 부과되는 의무로서만 파악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계몽은 정치적 문제로서 나타난다. 이성의 사용이 그것이 필요로 하는 공적 형태를 어떻게 띨 수 있으며, 앎을 획득하려는 과감함이 개인들이 신중하게 복종하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문제이다. 칸트는 결론적으로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일종의 계약―이성적 전제(專制)주의와 자유로운 이성의 계약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을 제안한다. 즉 자율적 이성의 공적이고 자유로운 사용이 복종의 최고의 보장일 것인데, 다만 이는 복종의 대상이 되는 정치적 원리가 보편적 이성과 일치한다는 조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칸트의 텍스트는 여기까지 다루자. 나는 이 텍스트가 계몽에 대한 적절한 서술을 구성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것을 결코 제안하지 않는다. 그 어떤 역사가도 18세기에 일어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형들에 대한 분석으로서 이 텍스트에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글과 세 『~비판』들 사이의 연관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실상 칸트는 계몽이 인류가 권위에 종속됨이 없이 이성을 사용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본다. 비판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비판의 역할이란 바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를 규정하기(determine) 위해서 이성의 사용이 정당한(legitimate) 조건을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정당하지 못한 사용은 망상(illusion)과 함께 독단주의와 타율을 낳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성의 정당한 사용의 원리들이 명확하게 정의될 때 비로소 이성의 자율성이 보장된다. 비판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계몽의 시대에 성장한 이성의 안내서이다. 반대측면에서 보면 계몽의 시대란 비판의 시대이다.


내 생각에는 칸트의 이 텍스트와 그가 역사를 다룬 다른 텍스트들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역사를 다룬 텍스트들은 대부분 시간의 내적 목적론과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향해 움직이는 도착점을 정의하려고 한다. 이제 계몽에 대한 분석은 역사를 인류의 성숙 단계로의 이행으로 정의하면서 현재적 실재를 전반적인 움직임 및 그 기본적 방향과의 관계 속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이 순간에 각 개인이 어떻게 저 전반적 과정에 대해 일정 방식으로 책임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가설은, 이 작은 텍스트가 비판적 성찰과 역사에 대한 성찰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기획의 현재적 상태에 대한 칸트의 성찰이다. 철학자가 특정 순간에 자신의 작업에 착수하는 이유를 제시한 것이 칸트의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철학자가 자신의 작업의 (지식과 관련된) 의미심장성과 역사에 대한 성찰 그리고 (자신이 글을 쓰는 시점인 동시에 그 이유인) 특수한 순간에 대한 특정의 분석을 연관시키는 것은 칸트의 경우가 처음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이 텍스트의 참신함은 바로, 역사에서 차이로서의 ‘오늘’, 특정의 철학적 과제의 동기로서의 ‘오늘’에 대한 성찰에 있다.


이런 식으로 봄으로써, 우리는 출발점, 근대의 태도(l'attitude de modernité, the attitude of modernity)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의 개관을 인식할 수 있을 것 같다.



II


근대(modernity)가 종종 하나의 시기로서, 혹은 적어도 하나의 시기를 특징짓는 일단의 특징들로서 말해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달력상에서 그것은 전근대의 뒤를 잇고 ‘탈근대’에 선행한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근대가 계몽과 그 발전의 뒤에 오는 후속 시기를 구성하는 것인지를 혹은 18세기의 기본적 원리들과의 관계에서 파열 혹은 일탈인지를 묻게 된다.


다시 칸트의 텍스트를 생각해 보건대, 우리가 근대를 역사의 시기로서보다는 태도로서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다. 그리고 ‘태도’로써 나는 현재적 실재와 관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이 행하는 자발적인 선택을 말하는 것이며, 결국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고, 행동하고 행위하는 방식―여기서 행동과 행위는 동시에 귀속관계를 표시하고 과제로서 나타난다―을 말한다. 물론 그리스인들이 ‘ethos’라고 불렀던 것과 비슷하다. 결과적으로 근대 시기를 전근대나 탈근대로부터 구분하려 하기보다는 근대의 태도가 역(逆)근대(countermodernity)의 태도들과 어떻게 싸우는지를 발견해내려고 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근대의 태도를 특징짓기 위해서 보들레르를 예로 들겠다. 그의 근대 의식은 19세기에서 가장 첨예한 것들 중 하나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1. 근대는 종종 시간의 불연속성의 관점에서 특징지어진다. 전통과의 결별, 참신함의 느낌. 지나가는 순간에 직면하여 느끼는 현기증. 보들레르가 근대를 “일시적인 것, 덧없는 것, 우연한 것”이라고 정의할 때 그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인 듯하다. 그러나 보들레르에게 근대적인 된다는 것은 이 영원한 운동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 운동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 데 놓여있다. 이 신중하고 어려운 태도는 현재적 순간을 넘어서지도 않고 그것에 뒤지지도 않으며 그 내부에 있는 어떤 영원한 것을 다시 포착하는 데 있다. 근대는 시간의 경과를 문제삼는 데 그치는 유행과 구분된다. 근대는 현재적 순간의 영웅적 측면을 파악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태도이다. 근대는 덧없는 현재에 대한 예민함의 현상이 아니다. 현재를 ‘영웅화’하는 의지이다.


보들레르가 당대의 회화에 대해 말한 것

보들레르는 19세기의 의복이 지나치게 추하다는 것을 알고 고대의 토가(toga)만을 그린 화가들을 조롱한다. 그런데 보들레르가 보기에 회화에서의 근대는 화폭에 검은 옷을 도입하는 데 있지 않다. 근대적 화가는 시커먼 프록코트(frock-coat)를 “우리 시대의 필연적인 의상”으로서 보여주는 화가, 당대가 죽음과 갖는 본질적이고 영속적이며 강박적인 관계를 당대의 유행에서 명백하게 드러내는 화가이다. 보들레르는 “당신은 현재를 경멸할 권리가 없다"는 말로 근대의 태도를 지칭한다.


2. 영웅화는 물론 아이러니하다. 근대의 태도는 지나가는 순간을 유지하거나 영속화하기 위해서 그 순간을 신성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을 덧없고 흥미로운 호기심의 대상으로서 수확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는 보들레르가 구경꾼의 태도라고 부르는 것이 될 것이다.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는 구경꾼인 ‘flâneur’[각주:5](한량?)는 눈을 뜨고 주목을 하며 기억의 창고를 짓는 것에 만족한다.

▷ 근대인은 이와 반대다. 탐색, 능동적인 상상력, 거대한 인간의 사막을 끊임없이 가로지르는 여행. ‘flâneur’의 목표인 상황과 연결된 즉흥적인 즐거움과는 다른 목표, 즉 ‘근대’를 추구한다. 유행으로부터 거기에 담겨있는, 역사 내의 시(poetry)의 요소를 추출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는다. 근대의 사례로 보들레르는 화가 꽁쓰땅땡 기(Constantin Guys)를 든다. 그는 구경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빛의 이글거림, 시의 메아리, 삶의 떨림, 한 줄기의 음악이 있는 곳 어디에나, 열정이 그의 앞에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곳 어디에나, 자연적 인간과 관례적 인간이 이상한 아름다움을 띠고 나타나는 곳 어디에나, 태양이 타락한 동물의 신속한 기쁨들을 비추어보는 곳 어디에나 머무는 최후의 사람”으로서 남아있다.


꽁쓰땅땡 기는 한량이 아니다. 보들레르가 보기에 그는 탁월한 근대적 화가이다. 세상이 잠들었을 때 그는 일하기 시작하여 그 세계를 변용시킨다. 그의 변용은 실재의 삭제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의 진실과 자유의 발휘의 지난한 상호작용이다. “자연적” 사물들은 “자연적인 것 이상”이 되며, “아름다운” 사물들은 “아름다운 것 이상”이 되고 개별적인 대상들은 “창조자의 영혼과 같은 충동적 삶의 활력을 부여받은” 것처럼 보인다. 근대의 태도에서는 현재가 지니는 높은 가치가, 현재를 있는 그대로와는 다른 식으로 상상하려는, 그리고 그것을 파괴함으로써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것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변형하려는 열렬한 절실함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보들레르의 근대는 실재적인 것에의 극단적인 주목이 그 실재를 존중하면서도 침해하는 자유의 실천과 대면하는 실행이다.


3. 그런데 보들레르에게 근대는 단순히 현재와의 관계의 형태가 아니다. 자신과의 사이에 수립되어야 할 관계의 양태이기도 하다. 근대의 태도는 필수불가결한 금욕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근대적이 되는 것은 자신을 지나가는 순간들의 흐름 속에 있는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복잡하고 지난한 다듬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보들레르가 당시의 어휘로 ‘Dandysme’(dandyism)[각주:6]이라고 부른 것이다. (* 푸꼬는 댄디(dandy)의 금욕주의에 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겠다고 한다.) 보들레르에게 근대적 인간은 자신을, 자신의 비밀과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창안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근대는 “인간을 그 자신의 존재 속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생산해내는 과제에 직면하도록 강제한다.


4. 마지막 덧붙임. 보들레르는 지금까지 말한 근대의 태도가 사회에, 정치 체제에 자신의 자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장소, 즉 보들레르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곳에서만 산출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18세기 말에 일어난 계몽이라는 복잡한 역사적 사건의, 혹은 지난 두 세기에 걸쳐 여러 형태로 나타난 근대의 태도의 요약이 될 수는 없다.


나는

① 한편으로는 특정 유형의 철학적 물음묻기―현재에 대한 인간의 관계, 인간의 역사적 존재방식, 자율적 주체로서의 자아의 구성을 동시에 물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가 계몽에 뿌리박은 정도를 강조해왔으며 

②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계몽과 연결시켜주는 끈은 교리적 요소들에 대한 충실함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 즉 우리의 역사적 시기에 대한 영속적인 비판으로서 지칭될 수 있는 철학적 기풍의 영속적인 재활성화임을 강조하려 해왔다.

이제 이 기풍을 매우 간략하게 특징지어보겠다.



부정적으로


1. 내가 계몽의 ‘공갈협박’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의 거부.

계몽은 여러 가지로 중요하지만―분석의 특권적 도메인을 구성함, 우리가 고찰해야 할 철학적 물음을 정식화함, 특정 방식의 철학하기를 정의함―이것이 우리가 계몽에 대하여 찬성이나 반대를 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택일의 방식으로 제시되는 모든 것은 거부되어야 한다. 예컨대

계몽주의를 받아들여 합리주의의 전통 속에 남아있거나

아니면

계몽주의를 비판하고 합리성의 원리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거나.

이러한  양자택일로부터의 해방은 계몽 속에 있을 수 있는 좋은 요소들과 나쁜 요소들을 결정하려고 하는 식으로 변증법적 뉘앙스들을 도입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계몽에 의하여 어느정도 역사적으로 결정되는 존재들로서 분석하는 데서 출발하려고 해야 한다. 이 분석은 일련의 역사적 연구들을 포함하는데 이 연구들은 계몽에서 발견될 수 있는 ‘합리성의 본질적 핵심’―어떤 일이 있어도 보존되어야 하는 것―으로의 소급으로 향하지 않는다. 이 연구들은 “필연적인 것의 현재적 한계”로, 즉 우리를 자율적 주체로서 구성하는 데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은 것으로 향한다.


2. 우리 자신에 대한 영속적인 비판은 휴머니즘과 계몽 사이의 항상 너무 쉽게 일어나는 혼동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계몽이 유럽 사회들의 발전의 특정 지점에 위치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계몽은 사회적 변혁의 요소들, 정치적 제도들의 유형들, 지식의 형태들, 지식과 관행들의 합리화의 프로젝트들, 기술적 변이들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계몽은―이는 내가 보기에 철학적 성찰의 전체 형태의 토대에 놓여있는 듯하다― 현재와의 성찰적 관계맺음의 방식하고만 연관된다.


휴머니즘은 전혀 다른 어떤 것이다. 그것은 유럽 사회들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경우에 반복적으로 나타난 주제(theme)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단의 주제들이다. 항상 가치평가에 묶여있는 이 주제들은 명백하게도 가치들에서만이 아니라 그 내용에서 크게 변해왔다. 더 나아가서, 차이화의 비판적 원리의 역할도 해왔다. 17세기에는 기독교 혹은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서 나타난 휴머니즘이 있었다. 금욕적이고 훨씬 더 신(神)중심적인 휴머니즘에 대립되는 기독교 휴머니즘도 있었다. 19세기에는 과학에 대해 적대적이고 비판적인 휴머니즘이 있었으며, 바로 그 과학에 희망을 둔 휴머니즘도 있었다. 맑스주의는 휴머니즘이었다. 실존주의와 개인주의(personalism)도 그렇다. 국가사회주의가 나타내는 휴머니즘적 가치들을 사람들이 지지하던 때도 있었다. 스딸린주의자들이 자신들은 휴머니스트들이라고 말한 때도 있었다.


휴머니즘과 연결된 모든 것을 무시해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는 성찰의 축으로 삼기에는 그 자체로 너무 유동적이고 다양하며 비(非)일관적이라는 결론은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17세기 이후로 ‘휴머니즘’이라고 불린 것이 항상 종교, 과학, 정치로부터 빌려온 인간관들에 항상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휴머니즘은 결국 자신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을 윤색하거나 정당화하는 데 복무한다.


휴머니즘에 의존하는 주제설정에 대립시킬 수 있는 것은 비판의 원리이며 자율 속에서의 우리 자신의 영속적인 창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계몽이 스스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식의 심장부에 있는 원리이다. 이 관점에서 나는 계몽과 휴머니즘이 동일성보다는 긴장의 상태에 있다고 보고자 한다.


어쨌든 양자를 혼동하는 것은 위험하며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 만일 18세기에 걸쳐 인간의 문제가 중요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계몽이 스스로를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경우는 드물다. 또한 19세기에 걸쳐서 16세기 휴머니즘의 역사서술이 항상 계몽 및 18세기와 구분되었고 때로는 명시적으로 대립되었다는 점이 주목에 값한다. 19세기에는 양자를 대립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적어도 양자를 혼동하는 경향만큼은 대립의 경향이 있었다.


우리는 계몽과 관련된 양자택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만큼 휴머니즘의 주제를 계몽의 문제와 혼합하는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혼합주의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식을 일정하게 밝히려고 한다면, 지난 두 세기 동안 있었던, 양자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분석이 여기에 가치있고 중요한 기획이 될 것이다.



긍정적으로


이렇게 조심하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비판에 들어있는 철학적 기풍이라고 할 것에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une ontologie historique de nous‑mêmes, a historical ontology of ourselves)[각주:7]을 통해 더 긍정적인 내용을 부여해야 한다.


1. 이 철학적 기풍은 ‘한계 태도’(attitude limite, limit-attitude)로서 특징지어진다. 우리는  거부의 제스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외부-내부를 양자택일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야 하며, 프런티어에 있어야 한다. 비판은 실로 한계를 분석하고 성찰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만일 칸트의 문제가 지식이 넘어서기를 포기해야 하는 한계를 인식하는 문제라면, 오늘날 비판의 문제는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에게 보편자로서, 필연적인 것으로서, 의무적인 것으로서 주어진 것에서, 특이하고 우연한 모든 것 그리고 자의적인 제한의 산물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요컨대 요점은 필연적인 한계의 형태로 수행된 비판을 가능한 한계넘어가기(franchissement possible, possible crossing-over)의 형태를 띠는 실천적 비판으로 전화시키는 것이다.[각주:8]


비판은 더 이상 보편적 가치를 가진 형식적 구조들을 찾기 위해 실행될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구성하게 했고 우리 자신들을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의 주체들로서 인식하게 한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탐구로서 실행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은 초월적이지 않으며, 그 목표는 형이상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은 그 의도에 있어서 계보학적이며 그 방법에 있어서 고고학적이다.

▷ 모든 지식의, 혹은 모든 가능한 도덕적 행동들의 보편적 구조들을 밝혀내려 하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을 그만큼의 역사적 사건들로서 표현하는 담론의 사례들을 다루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초월적이지 않고) 고고학적이다.

▷ 그리고 이 비판은 우리의 존재의 형식으로부터 우리가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도출하지 않고 현재의 우리를 만든 우연으로부터 현재의 우리의 존재가 더 이상은 아닐 가능성,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더 이상 생각하고 행하지 않을 가능성을 분리해낸다는 의미에서 계보학적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과학이 된 형이상학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의되지 않은 자유의 일”(le travail indéfini de la liberté., the undefined work of freedom)에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널리 새로운 추동력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2. 이 역사적-비판적 태도는 또한 실험적인 것이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의 한계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은, 변화가 가능하고 바람직한 지점들을 파악하는 동시에 이 변화가 띠어야 하는 형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역사적 연구의 영역에 열려있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적) 실재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이 총체적(global)이거나 근본적(radical)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기획들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다른 사회, 다른 사고방식, 다른 문화, 다른 세계관에 대한 전반적 프로그램들을 산출하기 위해서 현재적 실재의 체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전통들의 회귀만을 낳았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존재방식 및 사고방식들에 관련된 여러 영역들―권위에 대한 관계들, 성들 사이의 관계들, 광기나 질병을 인식하는 방식―에서 가능한 것으로 판명된 특수한 변형들을 선호한다. 나는 이 변형들을 최악의 정치적 체계들이 20세기에 걸쳐 되풀이 해온 새로운 인간을 위한 프로그램들보다 선호한다.


따라서 나는 우리 자신의 비판적 존재론에 적합한 철학적 기풍의 특징을, ① 우리가 넘어설 한계들의 역사적-실천적 시험(épreuve, test), ② 따라서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들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수행하는 작업”(travail de nous-mêmes sur nous‑mêmes en tant qu'êtres libres)에서 찾고자 한다.


3. 다음과 같은 이의제기가 물론 정당하게 제기될 수 있다 : 만일 우리가 항상 이러한 유형의 부분적이고 국지적인 탐구나 시험에 우리 자신을 국한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고 통제할 수도 없는 더 일반적 구조들에 의해 우리 자신이 결정되도록 허용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아닌가?


이에 대한 두 가지 응답

① 우리의 역사적 한계를 구성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완전하고 확연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우리의 한계에 대해서 갖는,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갈 가능성에 대해서 갖는 이론적․실천적 경험은 항상 제한적이며 구체적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다시 시작하는 처지에 있다.

② 그러나 이것이 무질서와 우연에서 말고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나름의 일반성, 체계성, 동질성, 관건들(걸려있는 것들, enjeu, stakes)을 가지고 있다.


관건

이는 ‘능력(capacité)과 권력의 관계들의 역설’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나타내준다. 18세기(혹은 그 일부)의 큰 약속 혹은 희망은 개인들이 서로와의 관계에서 동시적으로 균형있게 성장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더욱이 서양 사회들의 역사 전체에서 능력의 획득과 자유를 위한 투쟁이 영속적인 요소들을 구성해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능력의 성장과 자유의 성장 사이의 관계는 18세기가 믿었을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테크놀로지들(경제적 목적의 생산이든, 사회적 규제가 목적인 제도들이든, 소통의 기술들이든)이 어떤 권력관계의 형태들을 전했는지를 우리는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규율(집단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모두),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규범화의 절차들, 사회 혹은 인구영역들의 긴박한 요구들이 그것들이다. 여기서 관건은 어떻게 능력들의 성장이 권력관계의 강화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가이다.


동질성(Homogénéité)

이는 ‘실천적 체계들’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의 연구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가 준거의 동질적 도메인으로 삼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서 재현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을 결정하는 조건들도 아니다. 인간이 행하는 것과 인간이 행하는 방식이 바로 준거의 동질적 도메인이다. 즉

① 인간이 어떤 것들을 행하는 방식을 조직하는 합리성의 형태들(이는 테크놀로지적 측면이라고 불릴 수 있다)과

② 이 실천적 체계들 내에서 인간이 행동하는 데 있어서의 자유, 즉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에 대한 반응, 게임의 규칙들을 일정 정도 변경하기(이는 전략적 측면이라고 불릴 수 있다)이다.

이 역사적-비판적 분석의 동질성은 따라서 실천의 영역들에서 (양 측면에서) 확증된다.


체계성

이 실천적 체계들은 세 영역들에서 나온다.

① 사물들에 대한 통제의 관계들

② 타자들에 대한 작용의 관계들

③ 자신과의 관계.

이 세 영역들 각각이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 완전히 이질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사물에 대한 통제는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매개된다. 타자와의 관계는 다시 자기와의 관계를 수반한다. 그리고 그 역도 타당하다. 그러나 그 특수성과 그 상호연관이 분석되어야 하는 세 축이 있다.

① 지식의 축

② 권력(힘, pouvoir)의 축

③ 윤리의 축

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은 일련의 열려진 물음들에 답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증식되고 구체화되어야 할 일련의 연구들을 해야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물음들을 다루어야 한다.

- 우리의 지식의 주체들로서 우리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 권력관계를 행사하고 그것에 복종하는 주체들로서 우리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 우리 자신의 행동들의 도덕적 주체들로서 우리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일반성

마지막으로, 역사적-비판적 연구는 구체적이다. 항상 어떤 소재(un matériel), 어떤 시기, 일단의 구체적으로 결정된 실천들과 담론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적어도 서양 사회들의 수준에서는 이 연구들은 나름의 일반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시대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서, 제 정신인 것과 미친 것의 관계, 병과 건강의 관계, 혹은 범죄와 법의 관계의 문제가 그러고 성적 관계의 역할의 문제 등이 그렇다.


이렇게 일반성을 거론한다고 해서 그 메타역사적인 연속성을 재추적해야 한다든가 아니면 그 변형들이 추적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파악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일반성]에 대해서 아는 정도, 그 안에서 행사되는 권력의 형태들,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서 우리에 대해 하는 경험이 (대상들, 행동의 규칙들, 자신과의 관계의 방식들을 정의하는 문제화problématisation에 의해 구체적으로 규정되는) 역사적 형상들만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화(의 양태들)―인류학적 상수[각주:9]도 아니고 연대기적 변형도 아닌 것―의 연구는 일반적 중요성을 가지는 물음들을 그 역사적으로 특이한 형태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요약, 결론짓고 칸트로 되돌아감.

우리가 성숙한 성년의 상태에 도달할지 못할지는 나는 모른다. 계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어주지 않았으며 우리가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칸트가 계몽에 대해서 성찰함으로써 정식화한, 현재와 우리 자신에게 행했던 비판적 물음묻기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 같다. 칸트의 성찰은 지난 두 세기 동안에 중요성이나 효과가 없지 않았던 방식의 철학하기인 것 같다. 우리 자신의 비판적 존재론은 분명 이론이나 교의로서, 축적되고 있는 영속적인 지식의 집합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우리에게 부과되는 한계의 역사적 분석이기도 하고 또한 그 한계를 넘어갈 가능성의 실험이기도 하다고 보는 어떤 태도, 기풍, 철학적 활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철학적 태도는 다양한 연구의 작업으로 옮겨져야 한다.

① 이 연구는 실천―이는 테크놀로지적 유형의 합리성인 동시에 자유의 전략적 게임으로 이해된다―에 대한 고고학적인 동시에 계보학적인 연구에서 그 방법론적인 정합성을 가진다.

② 이 연구는 또한 사물에 대한, 타자에 대한, 우리 자신에 대한 관계의 일반성이 문제화되는 역사적으로 특이한 형태들의 정의에서 그 이론적 정합성을 가진다.

③ 이 연구는 역사적-비판적 성찰을 구체적 실천들을 통해 시험하는 과정에 기울이는 관심에서 그 실천적 정합성을 가진다.

오늘날 비판의 과제가 여전히 계몽에 대한 신념을 수반한다고 말해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제가 우리의 한계에 대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고, 즉 “자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열망에 형태를 부여하는 참을성 있는 수고”(un labeur patient qui donne forme à l’'impatience de la liberté)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



푸꼬의 역사적 존재론의 구성


  ‘실천의 체계들’ : 인간들이 행하는 것과 행하는 방식

  기술적 측면:
  행하는 방식을 조직하는 합리성의 형식들

  전략적 측면 :
  이 체계 내에서 행동하는 데 있어서의 자유로움
  사물과의 관계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   자신에 대한 관계, 자기생성
  지식의 축   권력의 축   윤리의 축
  [방법] 고고학적 : 보편적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특이성들)을 찾음. ↔ 초월적
  [의도] 계보학적 : 우리가 알 수 없고 행할 수 없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끌어냄. 종국에는 과학이 된 형이상학을 가능하게 하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되지 않은 자유의 일”(the undefined work of freedom)에 새로운 추동력을 주고자 함.


 

  1. “Qu’est-ce que les Lumières” [본문으로]
  2. Haskalah (Hebrew: השכלה‎; "enlightenment," "education" from sekhel "intellect", "mind"), the Jewish Enlightenment, was a movement among European Jews in the late 18th century that advocated adopting enlightenment values, pressing for better integration into European society, and increasing education in secular studies, Hebrew language, and Jewish history. Haskalah in this sense marked the beginning of the wider engagement of European Jews with the secular world, ultimately resulting in the first Jewish political movements and the struggle for Jewish emancipation. The division of Ashkenazi Jewry into religious movements or denominations, especially in North America and anglophone countries, began historically as a reaction to Haskalah. from Wikipedia (* 위키피디아에서와 달리 본문에서는 단어의 맨 뒤에 ‘h’가 없다.―정남영) [본문으로]
  3. 플라톤의 대화편 4권에 들어있다. Politikos(그리스어), Politicus(라틴) [본문으로]
  4. “There was a time when God directed the revolutions of the world, but at the completion of a certain cycle he let go; and the world, by a necessity of its nature, turned back, and went round the other way. For divine things alone are unchangeable; but the earth and heavens, although endowed with many glories, have a body, and are therefore liable to perturbation.” The Eliatic Stranger의 말이다. [본문으로]
  5. 한가롭게 빈둥거리는 사람. [본문으로]
  6.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멋부림’이라는 의미로 주로 유통된다. [본문으로]
  7.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이란 어구는 하트도 『네그리 사상의 진화』 206쪽에서 인용하고 있다. [본문으로]
  8. 예전에는 비판의 대상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필연적인 한계를 갖는다’는 것을 서술하는 것이 비판의 일이었다면, 이제는 ‘그 한계를 이러저러하게 넘어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이 비판의 일이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전자에도 못 미치는 비판들, 비판대상의 약점들―이는 ‘필연적 한계’와는 다른 것인데, 필연적 한계란 능력이 최고로 발휘된 지점에서 마주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비판들이 너무나도 많이 발견된다. [정남영] [본문으로]
  9. 인간 전체에 불변적으로 존재하는 것. 앞의 “메타역사적인 연속성”과 연관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