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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서의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적 인간형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장소 중 하나인 ‘대학’이라는 곳에 재직했던 덕분에, ‘신자유주의적 유형’이라고 부를 인간들이 사회의 상층부로 이동하는 모습을 비교적 일찍부터 목격하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욕심, ‘부자’가 되고 ‘사장’이 되려는 욕심을 틈타 사회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대통령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대한민국 국민’들은 ‘부자’가 되기는커녕 큼지막한 깡통을 차기 일보직전의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내가 파악한 신자유주의적 인간형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실력이 없다.

이들은 무언가 알맹이 있는 것을 하는 능력이 없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질직적인 것이든 비물질적인 것이든 사회에 유익한 재화를 생산하는 능력이 없다. 아마 이것이 다른 모든 특징들(문제점들)의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2) 상대와 협상할 줄 모른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욕심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무언가 비판하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린다. 그리고 답변이라고 써 보내는 경우에 겉으로는 그럴 듯한 말을 늘어놓지만 그 내용은, 마치 무조건 자기 욕구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떼를 쓰는 어린 아이처럼 막무가내이다.

 
3) 언어를 도구로서만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언어가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재현하는 기능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될 도구일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제 한 말과 정반대되는 말을 오늘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제는 그 말이 자신의 필요에 맞았고 오늘을 이 말이 자신의 필요에 맞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아마, 어떤 것이 정말로 자신의 진심을 담은 말인지 자신도 모르는 드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도 있을 것이다.


4)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이들은 사람을 돕기보다 괴롭히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니체가 말하는 ‘약한 자’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자신의 활력의 부족,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confidence in her/his being, 로렌스의 말)의 결핍을 다른 사람들을 괴롭힘으로써 채우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서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을 봐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짓밟는다. ‘대한민국’의 대학이 다른 어느 곳보다 더 쉽게 ‘통제사회’(들뢰즈)로 이동한 것은 이들이 다른 어느 곳보다도 대학에 많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5) 괴롭히는 방식은 주로 법의 이용이다.

이들이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은 의외로 ‘합법적’이다. 넓은 의미의 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학과 같은 경우에는 규정을 이용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규정을 제멋대로 바꿀 수 있는 조건(대학위원회들의 장악)의 형성이 중요하다. 국가의 법의 경우, 예컨대 국가보안법 같이 이전 시대에 물려받은 낡은 것을 포함한 공적인 성격의 법도 이용되지만, 명예훼손 고소·고발과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같은 사적인 성격의 것이 이들의 고유한 영역이다. 파업노동자들을 망가뜨리는 것이 파업관련 공법이라기보다는 사적인 성격의 손해배상청구소송임을 생각해보라.


6) 무척 꼼꼼하다.

보통 사람은 알기 어려운 법을 이용하는 데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이들은 자신들이 꾸미는 일에 매우 꼼꼼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곳에서 약점을 찾고,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을 새로 개발하여 사람을 괴롭힌다. 마치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을 늘 연구하는 것이 이들의 일인 듯하다. 이들이 이런 꼼꼼함을 생산적인 곳에, 사람들에게 유익한 곳에 썼다면 어떨까. 하지만 이런 ‘낭비’는 일어나지 않으니 ‘대한민국’이여 안심하라. 이들은 남을 괴롭히는 일 이외에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꼼꼼하므로!


7)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전무하다.

그렇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한다. 좀더 확대해도 자신과 관련된 아주 조그만 범위의 사람들의 '이익'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 너머의 사람들, 즉 일반적인 사회는 전혀 관심 밖이다. 아마 눈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죽는다 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일종의 사회적 싸이코패스이다.  이들이 '대학 발전'을 말하고 '국익'을 말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은 사람은 저 앞의 3)번을 다시 읽어보라.


8) 분열을 조장한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하고도 연합할 수 있지만 반대로 누구라도 배반할 수 있다. 아래 사람을 쓰더라도 말 그대로 '아낌없이' 부려먹는다. 절대로 그 사람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당연한 귀결로 이들이 가는 모든 곳에서 친목과 화합이 깨진다. 그 자리에 메마른 이기주의만이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9) 표면에 무척 신경을 쓴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없으면서도 사회 일반에 내세우는 자신들의 이미지는 무척 중시한다. 사실 실력보다는 이러한 이미지가, 허구가, 속임이 이들의 지위를 유지시킨다. 그래서 이들은 주류 미디어와 무척 사이가 좋다. 주류 미디어가 이들의 이미지를 좋게 유지해주기 때문이다.


10)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이 모든 특성들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돈에 대한 욕망이다. 아마 이들은 자본주의가 양성하는, 사적 소유에 대한 욕망의 최후의 화신들일 것이다. 사적 소유에 대한 집착이 이보다 더 발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는 이제 사적 소유의 역사가 일정한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들이 존재하면 할수록 사회가 망가진다는 것을 사회가 알게 될 때, 심지어는 ‘대한민국 국민들’도 알게 될 때 이들의 ‘위대한 역사적 사명’은 끝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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