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팅엄과 탄광지역 [로렌스의 고향 마을 회상]



From D. H. Lawrence, "Nottingham and Mining Countryside" (Phoenix 135면 이하)


(앞부분 생략)


그래서 [고향 마을에서의] 삶은 셰익스피어, 밀튼, 필딩(Henry Fielding),[각주:1] 그리고 조지 엘리어트(George Eliot)[각주:2]가 나타내는 농경적인 옛 영국과 산업주의가 이상하게 교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심한 더비셔(Derbyshire) 사투리를 사용하였으며 그래서 항상 “thee”와 “thou”를 썼다.[각주:3] 사람들은 거의 전적으로 본능에 의하여 살았으며 나의 아버지 나이의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을 정말로 몰랐다. 그리고 탄광에서 일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되지도 않았다. 그 반대였다. 십장제도(butty-system) 아래서 광부들은 땅 속에서 일종의 친밀한 공동체로서 일하였으며 그야말로 벌거벗은 상태로 서로를 알고 있었고 신기하게 가까운 친밀함으로 서로를 알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같이 있는 것, “채탄장”이 깊은 땅 속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위험의 상존이라는 조건으로 인하여 광부들 사이의 육체적이고 본능적이며 직관적인 접촉은 아주 고도로 발달된 것이 되었는데, 이 접촉은 실제로 만지는 것만큼이나 가까웠고 매우 진실되고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육체적인 인식과 밀접한 함께있음은 저 아래 탄갱에서 가장 강력했다. 광부들이 밝은 곳으로 올라올 때 그들은 눈을 잘 못뜨고 깜박였다. 그들은 어느정도 그들의 [삶의] 흐름(flow)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탄광의 이상한 어두운 친밀함을, 즉 벌거벗은 접촉을 땅 위로 가져왔다. 그리고 나의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석탄의 번들거림과도 같이 광채가 나는 내적인 어두움(darkness)이 항상 있어서, 우리는 이 어두움 속에서 움직이고 또 이 어두움 속에서 우리의 진정한 존재를 갖는 것 같았다. 나의 아버지는 탄광을 사랑하였다. 아버지는 한 번 이상 심하게 다쳤지만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치 전쟁에서 사람들이 어두운 시절의 강렬한 남성적 동지관계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접촉과 친밀함을 사랑하였다. 광부들은 어떤 것을 실제로 잃기 전까지는 자기들이 무엇을 잃었는지를 몰랐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것은 오늘날의 젊은 광부들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다.


광부들은 또한 미(美)에 대한 본능도 가지고 있었다. 광부의 아내들은 그렇지 않았다. 광부들은 아주 깊은 차원에서 본능적으로 활력있게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낮의 야망이나 대낮의 지력(智力, intellect)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정말로 그들은 삶의 합리적인 측면을 피하였다. 그들은 삶을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였다. 그들은 임금에 대해서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하여 바가지를 긁어댄 것은 당연히도 여자들이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하루에 기껏해야 짧은 몇 시간 동안 햇빛을 보는―겨울에는 종종 햇빛을 보지도 못하는―광부들과, 남편이 탄광에 가 있을 때 하루를 혼자 보내는 광부 아내들 사이에는 커다란 불일치가 있었다.


이러한 광부를 동정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다. 광부는 선동가들이나 감상주의자들이 그러라고 가르치기 전에는 자신을 동정하는 것을 꿈꾸지 않았다. 그는 행복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충족되어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표현의 측면에서는 아니더라도 수용의 측면에서는 충족되어 있었다. 광부는 자기 동료들과의 친밀함을 지속하기 위하여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그들은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화제가 정치인 경우조차도 사실에 대해서보다는 경이롭고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내, 돈, 소소한 일용품들이라는 형태로 다가오는 딱딱한 사실들을 피해서 그들은 집을 나와 술집에 갔고 집을 나와 일터로 갔다.


광부는 바가지 긁는 아내의 물질주의를 피하여 될 수 있는 한 빨리 집을 빠져나왔다. 이게 깨졌으니 고쳐내요! 아니면, 이러저러한 것들이 필요한데, 돈은 어디서 나오죠? 여자들은 항상 이랬다. 광부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크게 개의치도 않았다. 그의 삶은 다른 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망쳐 나왔다. 광부는 개와 함께 마을 근처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토끼, 새둥지, 버섯 등등을 찾아다닌다. 그는 시골을 사랑한다. 시골에 대한 무차별적인 느낌, 바로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엉덩이를 들고 앉아서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무엇을 보든 안보든. 그는 사물에 대하여 지적으로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삶이란 사실들에 입각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름(flow)에 입각해 있다. 광부들이 자신의 정원을 좋아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꽃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경우도 흔하다. 나는 이런 측면을 많이 보아왔다.


지금은 꽃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아주 빗나간 형태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꽃을 소유물로서 즉 깎고 다듬는 대상으로서 사랑한다. 여자들은 꽃을 보고 잠시 경이로워하다가 지나가는 식으로 꽃을 대하지 못한다. 만일 관심을 끄는 꽃을 보면 여자들은 즉시 그것을 따고 꺾어야 한다. 소유! 소유물! 무언가 나에게 덧보태지는 것! 오늘날 소위 꽃에 대한 사랑의 대부분은 이렇게 소유욕과 이기심에서 손을 뻗는 것일 뿐이다. 무언가 내가 갖고 있는 것, 무언가 나를 이쁘게 장식해 주는 것. 그러나 나는 많은 광부들이 자기 집에 딸린 정원에서, 아름다움의 현존에 대한 진정한 인식을 보여주는, 아주 이상하고도 막연한 종류의 명상에 빠져서 꽃을 바라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찬탄도 즐거움도 기쁨도 아닐 것이고, 소유본능에 종종 뿌리를 두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명상이며 초기 단계의 예술가적 자질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내 생각에 영국의 진정한 비극은 추함(ugliness)에서 온 비극이다. 시골은 아주 예쁘다. 인간이 만든 영국은 아주 저열하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는, 평범한 광부라도 저 아래 탄갱에서 일깨워진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의식으로부터 형성된, 미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대낮의 햇빛 속으로 올라왔을 때 그리고 특히 스퀘어즈(the Squares)나 브리치(the Breach)[각주:4]에 도착하고 자기집의 식탁에 앉게 될 때에, 차가운 추함 및 조야한 물질주의와 맞닥뜨리게 된다는 사실은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를 죽였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남자로서의 그를 망쳤다. 여자는 거의 끊임없이 물질적인 일들에 대하여 바가지를 긁었다. 여자는 그렇게 하도록 배웠으며 그렇게 하도록 부추겨졌다. 아들들이 “잘되도록” 하는 것은 어머니의 일이었으며 돈을 제공하는 것은 남편의 일이었던 것이다. 옛날의 자연 그대로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였고 교육을 받지는 못했던 나의 아버지의 세대에서는 남자는 짓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세대에 와서는 나와 함께 학교를 다녔고 이제는 광부가 된 친구들은 모두 짓눌려졌다. 기숙학교에서 되풀이 되는 소리와 책과 영화와 목사들 등쌀에. 그리고 민족의 의식과 인간의 의식 전체가 물질적인 번영이라는 것을 귀아프게 강조해대는 통에.


남자들은 짓눌려졌다. 그들이 패배한 잠시 동안에는 번영이 있다. 그러나 앞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 모든 재난의 뿌리는 ‘낙담’(disheartenment)이다. 남자들은 낙담하였다. 영국의 남자들은, 특히 광부들은 모두 낙담하였다. 그들은 배반당하였고 짓눌려졌다.


지금은 아무도 모를지 모르지만 19세기에 인간의 정신을 정말로 배반한 것은 추함이었다. 의기양양했던 빅토리아조 시대에 돈을 가진 계층과 산업의 증진자들이 저질렀던 큰 범죄는 노동자들을 추함의 상태로 내던져버린 것이다. 저속함, 모양 없고 추한 환경, 추한 이념들, 추한 종교, 추한 희망, 추한 사랑, 추한 옷, 추한 가구, 추한 집, 추한 노사관계. 인간의 영혼은 빵보다도 실질적인 아름다움을 훨씬 더 필요로 한다. 중산계층은 광부들이 피아노를 사는 것을 보고 비웃는다. 그러나 피아노란 것이 종종은 아름다움을 향해 막연히나마 손을 내뻗는 것이 아닌가? 여자에게는 피아노가 소유물이고 가구이며 무언가 그것 때문에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낄 어떤 것이다. 그러나 나이든 광부들이 피아노를 배우려고 하는 것을 보라. 이상하게 긴장된 얼굴로 자기 딸이 “소녀의 기도”를 연주하는 것을 귀기울여 듣는 것을 보라. 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막연한, 충족되지 않은 갈망인 것이다. 이러한 갈망은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더 깊다. 여자들은 과시를 원한다. 남자는 아름다움을 원하며 늘 그렇다.


만일 [탄광]회사가 언덕 꼭대기의 그 예쁜 터에다가 저 지저분하고 끔찍한 스퀘어즈를 짓지 않았다면, 만일 작은 시장터의 한가운데에 큰 원주를 세우고 그 즐거운 공간을 4분의 3 만큼 빙 둘러 아케이드를 세워 사람들이 거닐거나 앉을 수 있도록 하고 그 뒤에 예쁜 집들을 지었다면! 한 가구가 5-6개의 방으로 이루어지고 예쁜 입구가 달린 크고 실속이 있는 집들을 지었더라면. 무엇보다도, 노래와 춤을 장려하고―광부들은 여전히 노래부르고 춤추었다―그것을 위해 멋진 공간을 제공하였더라면. 옷에서 어떤 형태의 아름다움을 장려하고 집안 즉 가구와 장식에서 어떤 형태의 아름다움을 장려하기만 했더라면. 가장 멋진 의자나 식탁, 가장 예쁜 스카프, 가장 매력적인 방을 뽑아 상을 주었더라면! 회사가 이런 일을 했더라면 산업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산업문제는 인간의 모든 에너지를 단순한 획득을 위한 경쟁으로 비열하게 몰아 넣는 데서 생긴다.


당신은 노동자가 이러한 형태의 삶을 받아 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영국인에게 있어서 집은 자신의 성(城)이라는 등 등―“나의 작은 집.” 그러나 만일 당신이 이웃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들을 수 있다면 그건 성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만일 당신이 스퀘어에 사는 누구나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만일 당신이 바라는 것이 당신의 “성”과 당신의 “작은 집”을 나오는 것이라면!―그렇다면 성에 대해서 말할 것은 별로 없는 것이다. 어쨌든 여자만이 “자신의 작은 집”을 우상화한다. 그리고 그것도 최악의 경우의 여자, 즉 가장 탐욕스럽고 가장 소유욕이 강하고 가장 저열한 부류의 여자가 그렇다. “작은 집”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것은 없다. 추한 사소함을 땅표면에 크게 휘갈겨 놓은 것 같은 이 “집”에 대하여.


사실상, 1800년까지 영국인들은 엄밀히 말해서 농촌적인―아주 농촌적인 사람들이었다. 영국에는 몇 세기에 걸쳐 도시들이 있어왔지만 그것들이 진정한 도시였던 적은 없고 단지 시골 마을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었다. 진짜배기 도시들(urbs)은 없었던 것이다. 영국인들은 인간이 가진 진정한 도시적 측면, 시민적 측면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씨에나(Siena)는 그렇게 크지 않은 곳이지만 진정한 도시여서 시민들은 그 도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노팅엄은 일백만에 육박하는 광대한 지역이지만 무정형적인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노팅엄은 씨에나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인은 시민으로서는 어리석은 저개발 상태에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작은 집” 운운하는 데 기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환경의 절망적인 사소함을 받아들인 데 기인한다. 미국의 새 도시들은 런던이나 맨체스터보다 로마적인 의미에서 훨씬 더 진정한 도시이다. 에딘버러[각주:5]도 잉글랜드가 낳은 그 어떤 도시보다도 진정한 도시로서의 속성을 더 갖고 있었다.


“영국인의 집은 그의 성이다”라든가 “나의 작은 집”과 같은 말에 담긴 바보같은 소인적인 개인주의는 이제 시대가 지난 것이 되었다. 그것은 모든 영국인이 아직 시골마을 사람이고 시골집에 살고 있었던 1800년까지 해당된다. 그런데 산업체제가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영국인은 여전히 자기를 “시골집에 사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여 “나의 집”이니 “나의 정원”이니 하기를 좋아한다. 이는 유치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농장의 노동자들도 심리적으로는 도시의 자식이다. 오늘날 영국인들은 완전한 산업화의 불가피한 결과로 철저히 도시의 자식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를 지을 줄을 모르고 도시에 대하여 생각할 줄을 모르고 도시에 사는 법을 모른다. 그들은 모두 교외적이고 시골스러운 체하며, 그들 중의 누구도 진정으로 도시적이 되는 법을 모르고 ―로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아테네인들이―심지어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프랑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그렇게 진정으로 시민이 되는 법을 모른다.


이는 시골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시민의 더 큰 몸짓이 갖는 자부심과 위엄으로 서로 합쳐지게 만드는 저 공동체의 본능을 우리가 좌절시켰기 때문이다. 거대한 도시란 아름다움과 위엄과 어떤 찬란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영국인에게 있어서 억눌려지고 충격적으로 배반당한 측면이다. 잉글랜드란 “나의 집들”이라고 불리는 사소한 건물들이 저급하고도 보잘 것 없이 휘갈겨 놓여진 곳이다. 나는 영국인들이 저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자기의 작은 집들을 싫어하리라고 생각한다―여자들은 다르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보다 큰 몸짓, 보다 큰 규모, 어떤 찬란함과 화려함과 아름다움, 아주 큰 아름다움이다. 이 점에서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낫다.


100년 전에 산업의 증진자들은 감히도 나의 고향 마을에 추함을 저질러 놓았다. 더욱 극악한 것은, 오늘날의 산업의 증진자들은 영국 땅 위의 여기저기에 이제는 붉은 벽돌로 된 “집들”(homes)을 휘갈겨 놓아 마치 상처의 딱지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 작고 붉은 쥐덫 속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덫에 걸린 쥐들처럼 더욱 절망적으로 되고 있고 더욱 굴욕스러워 하고 있으며 더욱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단지 보다 저급한 부류에 속하는 여성들만이 남자에게는 쥐덫에 지나지 않는 이 작은 집을 계속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없애버리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것을 바꾸기 시작하자. 임금이나 노사분쟁엔 신경쓰지 말자.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자. 나의 고향 마을을 마지막 벽돌 하나까지 무너뜨리자. 핵심부를 계획하자. 초점이 되는 부분을 정하자. 그리고 그 초점으로부터 아름다운 발산(radiation)의 몸짓이 나오도록 하자. 그런 다음에 도시의 중심부까지 방대하게 펼쳐지는 큰 건물들을 예쁘게 짓자. 그리고 이 건물들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자. 지역별로 차츰차츰 해나가자. 새 잉글랜드를 건설하자. 작은 집들을 없애버리자. 휘갈겨 놓은 사소함과 보잘 것 없음을 없애버리자. 땅의 윤곽을 보고 이에 맞추어 짓되 충분하게 고결하도록 만들자. 영국인들은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개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찬란한 도시의 시민들로서는 토끼들보다도 더 미천하다. 그들은 항상 정치와 임금 등등에 대하여 저열하고 속좁은 아내들처럼 잔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


* 글을 읽고 드는 단상들
1) 산업주의(자본주의)와의 싸움은 활력 대 사적 소유의 싸움이다.
2) 프롤레타리아는 단순한 재산의 결여가 아니라 활력의 충만이다. 
3) 『1844년 경제철학수고』에서 맑스도 지적했지만, 사적 소유의 의식은 미적 의식을 훼손한다. 즉 몸(의 활력)에 족쇄로서 작용한다. 그래서 삶권력이다.
4) 자본주의와의 싸움, 아름다움의 회복은 사적 소유에 의하여 찢어발겨지지 않은 공통적인 삶의 터의 구성을 포함한다.

  1. 18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본문으로]
  2. 19세기의 여류 소설가. 필딩이나 엘리어트는 주로 영국 농촌의 삶을 그리고 있다. [본문으로]
  3. 각각 표준말 you의 목적격과 주격에 해당됨. [본문으로]
  4. 모두 노동자들의 거주건물이 모여 있는 지역임. [본문으로]
  5. 스코틀랜드의 수도. [본문으로]
Posted by 도도 minamj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