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활력의 관점에서 세상보기

활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3 ―권력으로서의 테크닉주의 활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3―권력으로서의 테크닉주의 삶권력의 성격에 대한 연구에서 푸코의 기여 가운데 하나는 권력이 물리적 억압과는 다른 식으로 작동하는 데 주목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작동양태들 중 하나가 ‘테크닉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내가 이 말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어떻게?’에만 시야를 고정하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원래 ‘어떻게?’란 ‘무엇을?’과 연관되어야 마땅하며 ‘무엇을?’은 ‘왜 그것을?’과 연결되게 마련이고 이것은 또 다른 것으로 연결되게 되어 있는 것인 것인데, 테크닉주의는 이러한 연관을 끊고 오로지 ‘어떻게?’만 부각시켜 물신화시키는 것이다. 삶권력이 그렇듯이 테크닉주의는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영역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러스킨이 『베니스의 돌들』에.. 더보기
내공과 외공 내공과 외공의 차이는 무협소설에서 제시되는 무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문자로 된 텍스트, 더 넓게는 기호로 된 담론을 접하면서 사유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배경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내가 내공과 외공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하는 차이에 민감하게 된 계기, 다른 하나는 이 차이를 내공과 외공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하게 된 계기이다. 전자에 대하여 : 내가 예의 차이에 민감하게 된 계기는 첫째는 여러 이론적 입장들이 충돌하는 논쟁을 (참여자로서 그리고 동시에 청중으로서) 겪으면서이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나에게는 단지 입장의 차이만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차이가 더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눈을 가지게 된 것은 한편으로는 문학 공부의 자연스러운.. 더보기
활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2―‘자신에 대한 용기’ 활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2―‘자신에 대한 용기’ 로렌스를 읽다보면 ‘자신에 대한 용기’(courage with oneself)라는 표현을 만난다. 대체로 용기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휘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자신과의 관계에서 용기란 과연 무엇일까? 로렌스는 들뢰즈, 네그리가 활약하기 이전에 벌써 ‘자아’를 ‘특이성들의 다중 혹은 다양체(multiplicity)’로 보았던 작가이다. 그에게 자아(진정한 의미의 자아)는 늘 변하는 ‘여럿’이다. 나는 불일치하는 부분들의 아주 이상한 집합이다. 오늘 내가 말하는 ‘예!’(yea)는 내일 내가 말하는 ‘예!’와 다르다. 오늘 내가 흘리는 눈물은 1년 전에 내가 흘렸던 눈물과 아무 관계가 없다. 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나는.. 더보기
활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1 씨리즈 설명 나는 요즘에 와서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새로운 세상, 재미있고 행복하고 ‘쌔끈한’ 세상이 오려면 활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활력의 관점에 대해서는 (비로 이 말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멋있는 철학자, 소설가, 시인, 예술가들이 말을 해놓았다. 이것을 내 말 속에 섞어서 소개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동류들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문화로서의 신자유주의’ 씨리즈도 완결을 안 해놓았는데 또 무슨 씨리즈를 시작하냐,고 스스로 항의한다. 그냥 일이 그렇게 되는 걸 어쩌겠는가,라고 스스로 답한다. 사실 (‘문화로서의 신자유주의’ 씨리즈도 그렇지만) 이 씨리즈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대략 써놓았고 그 일부를 다듬어서 내보내는 것이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