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들의 영어 공부
-- 한국 신자유주의와 영어
나로서는 입이 아플 정도로 자주 말한 것이지만, 한국의 영어공부 문화는 사이비 문화이다. “잘못 사용되고 다른 목적에 종속된 종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1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주된 원인은 영어를 가르치는 제도들(공교육, 사교육 모두 포함)에서 이루어지는 영어교육이 망가진 데 있다. 자기계몽에 의해 스스로 영어실력을 키우는 소수의 사람들은 제도가 망가지든 아니든, 제도의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언제나 나온다. 이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경우들이어서 우리가 사회적 차원에서 이야기를 할 때 다룰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사회적 논의의 장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은 제도의 문제이다. 현재 교육제도는 대중교육을 담당하며 (지금은 대학교육마저도 대중교육의 범주에 들어가며 우습게도 대학원도 일정하게 그런 속성을 띠어가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가 망가졌을 때에는, 영어능력의 경우, 영어를 제법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두터운 층을 이루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 이 층이 형성되지 않으면 영어와 관련된 대중지성이 형성되기 어려우며 따라서 소수의 영어전문가에의 의존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 문화가 썩었기에 영어전문가(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잘 하는 사람)의 배출마저도 점점 더 위협을 받게 될 것이며, 그러다가 종국에는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전문적 ‘인적 자원들’마저도 가뭄에 강바닥 드러나듯이 말라버리게 될 것이다. 다른 용어를 쓰자면, ‘개판’이 되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처참한 지경에 이른 데에는 한편으로는 상업주의적 탐욕이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무지가 작용했다. 상업주의적 탐욕의 작용이란 각종 제도권·비(非)제도권 학교·학원들이 교육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가리키며 여기에는 입시교육에 매몰되는 태도가 당연히 포함된다. <입시성공 = 증가된 이익>이라는 공식이다. 2 신자유주의적 무지의 작용이란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언어에 대한 이해의 증진을 막고 잘못된 언어관을 유포하여 결국 학생들의 영어공부에 크고 깊은 수렁을 파놓게 된 것을 말한다. 영어 공부를 말하는 글에서 ‘이익’추구에 대해서는 상세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 여기서는 신자유주의적 언어관의 어처구니없는 무지에 대해서 더 말해보자. 3
언어는 기본 언어(일반인의 경우에는 구어이므로 4 앞으로 그냥 ‘구어’라고 지칭할 것이다)와 학습 언어인 문어(글자 언어)로 나뉜다. 이것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인간의 뇌의 기본적 구조(본능)와 관련된 분류이다. 뇌과학자들(신경과학자들, neuroscientists)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구어에 가능한 음소들(phonemes)과 형태소들(morphemes) 5을 추상·포착하고 어순을 추상·포착할 능력(즉 문장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단어들(형태소들)을 ‘번역 없이’ 그대로 의미에 연결시키는(mapping하는, 전사轉寫하는) 능력이 갓 태어난 아기의 뇌에 6본능으로서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문어 능력 즉 읽고 쓰는 능력은 뇌에 내장된 선천적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능력이다. 7
구어 능력 즉 기본적 언어 능력의 본능적 잠재성은 말 그대로 모든 언어를 실제로 습득하는 쪽으로 현실화되지 않는다. 실제로 아기의 능력은 자신이 접하는 특정의 개별 언어를 습득하는 쪽으로 현실화된다. (부모가 서로 다른 언어를 한다거나, 부모가 이민을 가서 집에서 하는 말과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는 말이 다르거나 하는 경우처럼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개별 언어를 습득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런데 뇌에 내장된 이러한 능력은 일정한 시점(사춘기 정도라고 한다)이 지나면 퇴화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능력이 살아있는 아이들은 어느 나라에 가든 한 일주일 있으면 동네 아이들과 그 나라 말로 대화를 하는 반면에, 이 능력이 퇴화된 성인들은 웬만큼 노력해도 그 나라 말을 구어로서 익히기 어려운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뇌에 기본적으로 내장된 능력이 ‘추상’의 능력이라는 점, 형태소가 번역 없이 바로 의미로 연결(전사)된다는 점, 그리고 그 능력이 일정한 시점에서 퇴화된다는 점이 함축하는 바를 잘 이해해야 한다. 첫째 점과 둘째 점은, 구어능력이 ‘흉내’를 통해, 즉 기계적으로 외워서 습득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추상하는 능동적인 행동이 있어야 하며, 의미에의 직접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계적으로 외우기란 의미와의 연관을 무시하거나 최소화한 채, 심지어는 왜곡한 채 이루어진다.) 셋째 점은 영어 원어민이 아닌 사람이 영어 구어를 제대로 익히는 것이 어렸을 때는 비교적 쉽지만 사춘기가 지나고 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우며, 따라서 원어민이 자국의 구어를 익히는 데 든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식으로 보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영어교육은 영어 구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된다. 이른바 지구화와 함께 영어의 중요성이 부상했고, 영어 텍스트를 읽는 것보다는 영어로 영·미국인과 말하는 것이 눈에 먼저 들어왔기에 영어 말하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영어 구어를 가르치는 것이 훌륭한 상품으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어를 강조하는 것은 결코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없다. 언어의 활력과 구어와의 연관을 강조하는 문학비평적인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대인 소통의 필요가 늘수록 구어가 더 필요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그 이전에 워낙 한국의 영어 구어 교육이 부실했던 터라 구어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구어 교육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구어에 대한 강조가 왜곡된 방식으로 이루어진 데 있다. 우선 기존의 ‘문법 위주의 교육’을 구어교육이 제대로 안 된 원인인 양 매도하는 풍토가 생겼다. ‘몇 년을 영어를 배웠는데도 말을 한 마디도 못하다니!’와 같은 조롱조의 말들이 사회에 침투한 신자유주의 바이러스들을 통해 유포되었다. 왜 “신자유주의 바이러스들”을 거론하는가 하면, 사실 영어 구어 교육은 물론이고 문법 위주의 영어교육조차도 제대로 이루질 수 없을 정도로 교육자원이 빈약했던 것이 실제 원인인데도, 시간이 많이 들고 힘이 많이 드는 것을 싫어하고 그저 빨리 영어 말하기 실력이 늘고 싶은 어리석은 고객들의 어리석은 요구에 야합하여 구어 상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문법 위주의 교육’을 ‘마녀’로 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어리석은 고객들의 수가 많다면 이들을 ‘호려야’ 돈을 벌지 않겠는가.
왜곡된 방식의 또 다른 측면은 (‘문법 위주의 교육’을 배제하는 태도에 함축된 것이지만) 영어 말하기 교육이 ‘흉내’(기계적으로 외우기)에 치중한다는 점이다. 이럴 수밖에 없다. ① 만일 앞에서 말한, 뇌에 내장된 기본적 능력이 아직 살아있는 나이의 한국 아이들이라면 원어민과 같은 환경에서 원어민과 같은 시간에 구어를 터득할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근접할 수는 있을 텐데, 여기에는 매우 좋은 시설과 매우 좋은 선생이 필요하다. “매우 좋은 시설과 매우 좋은 선생”은 신자유주의 풍토에 맞지 않는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② 뇌에 내장된 기본적 능력이 퇴화된 나이의 한국 학생들은 원어민과 같은 환경에서 원어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 구어의 터득을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③ 따라서 신자유주의 장사치들의 결론은 ‘흉내’(기계적으로 외우기)에 기반을 둔 영어 교육일 수밖에 없다. 단어나 문장을 그냥 외워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8인간의 언어 배우기는 ‘흉내’로 시작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흉내’를 넘어서지 못할 때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잘못된 말하기 교육에의 집중은 부정적인 방향으로의 ‘폭주효과’(runway effect) 9를 발생시켜서 결국 영어를 배우는 능력을 고사시키는 문화를 사회 전체에 퍼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 문화에 세뇌된 수많은 학생들은 아무리 시간을 많이 들여도 원어민이 뇌에 내장된 능력을 현실화하면서 생기는 기본적인 구어 능력의 출발선에도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흉내 내기’ 즉 ‘기계적으로 외우기’를 잘못된 공부 방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았지만,한국에는 매우 우스운 다른 식도 존재한다. 문제를 푸는 ‘기술’을 익히는 잘못된 공부방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영어교육을 주제로 한 영문학자들의 학회에 한 고등학교 교사가 참석했는데, 이 교사는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자신도 영어공부를 잘 시키고 싶지만,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수능영어문제를 푸는 기술―예를 들면 ‘선택지에 이러저러한 말이 나오면 이것은 답이 아닐 확률이 높다’와 같은 요령들―을 가르칠 때 반 전체의 성적이 확실히 올라간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이익’을 우선시하는 풍토에서 영어를 진짜로 가르치는 데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저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기에게 내장된 뇌의 능력에는 어순 즉 문법의 골간을 추상하는 능력과 단어를 의미로 직접 연결시키는 능력이 속한다. 흉내에 기반을 두고 속성(速成)을 지향하는 한국의 영어 말하기 교육은 바로 이 추상과 의미전사의 능력을 양성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도 관계도 없기 때문에, 아니 그런 차원이 존재하는지를 아예 모르기 때문에 애초부터 효과적일 수 없는 교육인 것이다. 단어나 문장을 수백 개 외워서 원어민과 극히 기본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데 만족한다면 모를까 10 진짜 영어 실력이 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흉내 혹은 기계적으로 외워서 익히는 것은 사실 원숭이가 하는 언어공부지 인간이 하는 언어공부가 아니다.
<<프로젝트 님>>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니 한 과학자가 (이 사람은 연구비를 노린 ‘나쁜 자’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침팬지가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가’를 실험한다. 그 방법은, 갓 태어난 아기 침팬지를 엄마 침팬지에게서 떼어내서 인간의 가정에서 인간과 함께 인간처럼 키우면서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침팬지는 인간의 음성을 낼 수 없으므로 수화를 가르친다. 앞의 주석에서 말했듯이 수화도 기본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실패다. 이 침팬지가 상당히 많은 단어들을 배우기는 했지만,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은 결국 획득하지 못한 것이다. 이 침팬지는 결국 침팬지의 삶으로 다시 되돌려는데, 하필이면 의약품을 임상실험하는 데로 보내져 침팬지로서도 매우 불행한 삶을 보내게 된다. 자신이 사람과 수평적인 관계라고 생각한 침팬지가 침팬지로 되돌아가면서 겪었을 고통을 생각해 보라! 어쩌면 다른 침팬지들보다 더 불행한 침팬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11
침팬지는 음소와 어순을 추상하고 단어를 의미에 전사시키는 능력이 뇌에 내장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의 과정에서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진화상의 차이를 한 침팬지가 (침팬지로서는 아무리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환경에 좀 있게 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보통 사람이라도 조금 생각해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이것을 그 과학자는 오히려 몰랐던 것이다. 모든 실험은 결국 실험자가 그 이전에 도달한 여러 차원의 지식 및 생각들의 종합에 기반을 두어 가설을 세우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 과학자가 세운 가설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인간에 대한, 진화에 대한, 언어에 대한 무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생각해보라. XT급 PC를 요즘 최고 사양의 PC들 사이에 가져다 놓고 케이블로 서로 연결하면 몇 기가짜리 동영상을 끊김없이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는 연구비를 받아 실험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무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차라리 침팬지들 사이의 고유한 소통방식(이런 것이 필시 있을 테니까)을 (더)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적인 일이었다.
이 과학자의 어리석음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언어에 대해서 보이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가 없다. 언어와 인간 존재의 긴밀한 관계를 잘 모르고, 언어능력을 무슨 도구를 다루는 기술처럼 흉내와 기계적 반복훈련을 통하면 획득될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원숭이를 인간과 혼동하는 것과 인간을 원숭이와 혼동하는 것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대로 된 영어 말하기 교육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일 크게 고려할 것이 사춘기가 지나서 기본적 언어습득 능력이 퇴화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사춘기 이전에도 영어에 원어민처럼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있지 않다. (이것은 아직 한국말도 못하는 어릴 때부터 영어학원에서 집어넣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결국은 뇌에 내장된 능력이 퇴화되고 나서야 영어 말하기를 배우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퇴화되는 뇌의 기본적 능력을 무언가로 보완하지 않고서는 문장을 구축하고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익힐 수가 없다. 이 보완의 역할을 훌륭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읽는 영어 능력의 양성이다. 12
음소를 추상하고 통사구조를 추상하는 뇌의 기본 능력은 문자로 된 단어들을 익히고 그 단어들이 문장을 구성하는 규칙을 알게 해주는 문법을 익힘으로써 보완한다. 여기서 문법을 익힌다는 말은 추상적인 이론적 지식으로서의 문법을 숙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이것은 문법학자나 영어선생이 할 일이다) 문자로 된 단어들이 문장을 이루는 원리를 구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추상하는 훈련을 하여 그 훈련의 결과를 뇌에 새기는 것을 말한다. 의미와의 직접 연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눈앞의 텍스트를 해석하여 의미에 직접 연결시키는 훈련을 하여 그 훈련의 결과를 뇌에 새긴다. 13 단어들, 단어들이 모여서 이룬 문장들, 문장들이 모여서 이룬 단락들, 단락들이 모여서 이룬 글들, 글들이 모여서 이룬 책, 책들이 모여서 이룬 ‘의미의 우주’―이런 순으로 의미의 지평이 확장되는데, 읽기를 배우면서 이러한 확장을 체험하여 뇌에 새기게 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구어에서는 체험이 불가능한 차원의 것이다.
영어문장을 보면 한국어를 통하지 않고 의미가 바로 들어오는 경지에 이르더라도 그것이 바로 말이나 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책읽기를 통해서 배운 영어 능력을 다시 말하기 능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4 (영어문장을 보면 의미가 바로 들어오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우리말로 전환시킨 다음에야 이해하는 단계에서도 그것을 말하기로 전환시키는 연습은 꼭 해야 한다. 이 연습이 다시 읽기 능력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뇌에 내장된 기본적 능력이 이미 퇴화된 경우에는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읽기를 통해서 말하기를 훈련하지 않는 한 흉내와 기계적 반복이 아닌 제대로 된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영어 읽기 공부가 가진 장점이 있다. 아무리 뇌에 내장된 능력이 퇴화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상실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국어도 까먹을 정도의 노령이 아닌 한에는 영어를 말하는 나라에서 일정 시간 이상 살게 되면 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 구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획득된 구어는 대단히 좁은 소통범위를 가지게 된다. 대부분 그저 일상적인 대화나 하는 정도에 그치며, 개인과 사회의 중요한 일들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판단, 평가, 소감을 표현하는 데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소통범위를 구어의 차원에서만 확대하려면 앞에서 말한 대로 엄청난 시간이 들어야 한다. 그러나 영어로 된 책으로 획득한 다채로운 표현을 구어 능력으로 전환한다면 비록 원어민처럼 유창하지는 못해도 그들 못지않은 표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15
영어로 문서를 읽는 능력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거의 모든 정보가 영어로 인터넷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영어 문서를 해독하는 능력이 영어로 말하기 능력보다 사실상 더 긴요한 능력이 되고 있다. 원어민과 대화를 하는 경우보다는 영어를 인터넷에서 문서로 접하는 경우가 더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서들의 내용을 한국어로 옮겨줄 사람도 결국 애초에 이 영어문서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 읽기 능력을 팽개친다는 것, 더군다나 구어 능력을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능력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현재의 사이비 영어공부 문화는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영어공부를 할 젊은이들 거의 모두를 이러한 자살 행위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치명적 사이비 문화를 주도하는 세력은 정부의 교육 담당부서, 언론, 학교운영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계몽하지는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자식들이 잘 되기만 무지한 방식으로 바라는 수많은 학부모들이다. ♣
[덧붙임]
요즘에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부모들이 많아서, 영어로 아이들과 말하는 엄마들을 자주 본다. 일찍 가르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말과 영어 두 언어를 거의 동시에 습득하는 데는 그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어 주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수적이며, 이 학습이 현재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어서 앞으로 높은 수준으로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조건을 갖추고 나서도 기다려봐야 되는 일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것도 아닌 조건을 억지로 아이에게 부과하고 성과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일을 망치기 쉽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비극적인 사례를 하나 목격한 바 있다. 한때 수시에 ‘외국인’이라는 범주가 있었는데, 외국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살다 온 학생들에게 지원 자격을 주는 ‘국제화 적응자’라는 범주와 달리 그냥 국적이 외국인이면 되는 (사실상 웃기는) 범주였다. 이 범주에 어느 학생이 지원을 했는데, 국적은 ‘미국’이지만 (미국 학생이 왜 영문과에?) 생김새는 한국 사람이고 부모도 멀쩡한 한국 사람이었다. 이 학생이 우리말로 말을 잘 못하기에 영어로 면접을 하는 게 편하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것이었다. 지원서에 딸린 서류를 확인하고 나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이 학생을 미국에서 낳았는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미국 국적자로 만들었고, 그래서 이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한국과 미국 사이를 (아마도 혼자서) 왔다 갔다 하며 살았다. 학교도 여기서 일부, 거기서 일부 번갈아가며 다녔으며 (‘아이쿠, 우리말 영어 둘 다 잘하겠네!’) 최종적으로 한국 고등학교를 다니다 졸업을 해서 지원을 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성적표를 보니 거의 전교에서 꼴등이었다. 초등학교 성적은 이보다 훨씬 좋았다. 이 학생은 부모의 욕심으로 인해서 어린 시절의 학습을 완전히 망쳐버린 것이며,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게 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면접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 것이었다. 외국인 범주는 정원 외이다. 그래서 교수들이 특별하게 문제가 있는 태도를 취한 학생이 아니면 면접에서 떨어뜨릴 수 없다. 게다가 이 학생은 혼자 지원했으므로 합격했을 가능성이 큰데, 그 이후 이 학생을 본 기억이 없다. 실제로 다녔더라도 이 학생의 학습 능력으로는 학과 공부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부모들을 비롯하여 수시에 지원하는 일부 학생들조차도 대학에 들어오고 나면 다 되는 줄 아는데, 학습 능력의 부족으로 학과의 전공공부를 감당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사례가 많다. 생각해보라. 영문법 기초의 반의반도 떼지 못했는데, 영문학 작품을 읽는 수업을 어떻게 따라가겠는가.
- 니체,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본문으로]
- 아마 ‘이 공식이 왜 잘못 되었지?’라고 속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것이야말로 그만큼 예의 사이비 문화가 널리 뿌리를 박고 있는 증거이다. 이 사람들은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양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싸구려 장사치’ 사고방식이다. [본문으로]
- 사실 신자유주의적 언어관이 가장 근본적으로 한 일은 사회 전체적으로 우리말 능력의 후퇴를 낳은 것이다. 영어공부 문화의 부패는 이에 부수되는 것일 뿐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말 문제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본문으로]
- 구어라고는 했지만, 말을 못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수화(sign language)가 기본 언어에 해당한다. 본능에 속하는 기본 언어가 반드시 구어(음성 언어)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본문으로]
- 형태소 : 의미의 기본 단위 [본문으로]
- 이는 목소리를 들으면 즉시 그 소리를 의미를 가진 소리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인간의 뇌는 소리들 가운데 의미를 가진 소리들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본문으로]
- 이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Jeanette Norden, Understanding the Brain, 20강 「언어」를 참조했다. Jeanette Norden is a neuroscientist and Professor of Cell and Developmental Biology in the School of Medicine and Professor of Neurosciences in the College of Arts and Sciences at Vanderbilt University. [본문으로]
- 문장의 경우는 짧은 문장일 수밖에 없다. 조금만 길어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8, 19세기의, 거의 한 단락에 해당하는 긴 문장은 이들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괴물일 것이다. [본문으로]
- 폭주효과는 어떤 한 방향으로 에너지와 노력들이 점점 더 집중되는 현상을 말한다. 너도나도 따라한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 사실 이런 수준을 보고 영어를 잘 한다고 치켜세우는 풍토가 매우 널리 퍼져 있다. [본문으로]
- 다행히도 맨 마지막에는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래도 좀 나은 데서 있다가 2000년에 26세로 생을 마친다. [본문으로]
- 이러한 보완이 없다면 원어민이 영어에 노출된 시간에 몇 배를 곱한 시간 동안 영어(구어)에 노출되어야 웬만큼 영어 구어를 구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기본적으로 비원어민 환경에서 이 만큼의 시간을 과연 감당할 수 있는가? 없다. 미국 아이가 초등학생으로서 영어를 말하는데 만 6년이 걸렸다면 여기에 3을 곱한 18년을 미국에서 살면서 구어만 연습한다 해도 구어적 능력으로는 이 초등학생만큼 영어를 말할 수는 없다. 시간이 갈수록 구어 습득 능력은 퇴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사람은 일정 나이가 지나면 자음을 감지하는 능력부터 퇴화된다.) [본문으로]
- 이 과정에서 아직 의미와의 직접 연결이 안 되는 단계에서는 우리말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서 의미를 우리말로 옮겨서 이해하는 방법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말을 못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없는 것이다. [본문으로]
- 쓰기 능력도 마찬가지인데, 쓰기 능력의 연마는 원어민의 경우에도 후천적으로 글공부와 병행해서만 가능하다. [본문으로]
- 유창함을 언어를 잘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정확한 발음을 언어를 잘 하는 것으로 보는 것과 함께 언어에 대한 무지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언어철학적·문학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뇌과학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Jeanette Norden은 역설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의미이다. 그것이 언어의 핵심이다.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Understanding the Brain) 국적은 소련에서 영국으로 옮겼지만 혈통은 폴란드 사람인 영국 소설가 콘래드(Joseph Conrad)는 뇌의 기본적 능력이 퇴화한 20대에서야 영어를 유창하게 (그러나 특이한 억양으로) 할 수 있었지만, 영국문학에서 최고의 반열에 속하는 소설들을 썼다. 그가 쓴 첫 소설은 36살에 영국 상선대(merchant marine)에서의 선원 생활을 마치고 쓴 것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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